[우리말과 한국문학] 동계 정온의 제주 유배시

  •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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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1-11-04 08:22  |  발행일 2021-11-04 제면
조선시대 절해고도 유배지

제주에 위리안치되어 생활

유배 중 학문과 창작에 몰두

현지인들의 삶을 시로 남겨

귤림서원에 五賢으로 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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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제주는 여름의 뜨거움이 언제였는지조차도 까마득할 만큼 가을 색깔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늦가을의 제주를 즐기기 위한 여행객이 관광지를 중심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제주는 절해고도의 유배지였다.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이들 중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들도 많은데, 인조반정에 의해 폐위된 광해군이나 서예가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구한말 항일의병운동을 벌였던 면암 최익현 등 많은 이들이 제주에서 고통과 시름의 나날들을 보냈다.

조선 중기 문인인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도 그중 하나다. 동계는 한강 정구와 내암 정인홍을 사사했던 인물로, 불혹을 넘긴 나이에 관직에 진출하여 광해군 및 인조 연간의 내우외환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선비다. 그가 10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1614년 광해군에게 올렸던 '갑인봉사(甲寅封事)' 때문이다. 그는 이 상소에서 선조의 적장자였던 영창대군의 죽음과 관련된 이들에 대한 강한 처벌을 주장함으로써 광해군의 분노를 사 머나먼 제주도 대정현에 위리안치되는 형벌을 받았다.

동계는 비슷한 시기 제주로 유배를 와 바둑과 거문고로 답답한 마음을 달랬던 송상인과 이익과는 달리, 유배 생활 중에도 항상 글을 읽으며 공부에 몰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주의 날씨와 풍토는 육지와는 달라 그를 매우 힘들게 하였고, 늘 고향의 모친과 처자식을 그리워하였다. 그러한 까닭으로 '황혼에 달을 보고(黃昏見月)'라는 시에서 그는 "대발은 성기고 차가운데 달빛이 비껴들고/ 수심 어린 사람을 쫓아 하얀 머릴 비추네/ 오늘 밤 고향에선 응당 저 달을 함께 보고/ 아내와 아이들은 하늘 끝 바라보며 눈물 흘리겠지"라고 노래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유배형을 받았던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죽음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짓다(偶成)'라는 작품에서 그는 "북쪽에서 오는 소식은 모두가 겁이 나/ 밤엔 등불로, 낮엔 돈을 던져 점을 치네/ 죽고 사는 것 오로지 도외시할 줄 알기에/ 술에 의지하여 애타는 마음을 풀어 보련다"라고 노래하였다. 적소(謫所)의 죄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과 이러한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술에 의지했던 동계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한평생 강직하게 살았던 동계 또한 유배지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동계는 유배 생활 속에서 현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이를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이 '가난한 여인의 노래(貧女吟)'다. 이 시에서 그는 "흰옷 입은 가난한 여인, 모습이 말이 아닌데/ 등불 아래 바늘 들고 옷을 꿰매네/ 밤이 깊도록 졸면서 옷을 풀지도 못하고/ 아침이면 좁쌀을 빌려 또 방아를 찧어야 하네"라고 노래하여 현지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었다.

이후 동계는 약 10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간 이후에도 제주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던 것 같다. 17세기 중반에 세워진 귤림서원(橘林書院)에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우암 송시열과 함께 오현(五賢)으로 배향됨으로써 제주지역의 사표로서 오랫동안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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