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관심종자

  • 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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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08  |  수정 2021-11-08 08:24  |  발행일 2021-11-08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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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비하해서 '관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최근 관종은 부정적 측면보다 오히려 경제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유튜브의 관심이 조회수에서 시청 시간으로 바뀌면서 소비자 관심의 크기인 시간을 돈으로 바꾸어 크리에이터와 플랫폼이 공유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대중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절벽 위에서 사진을 찍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고, 짜장면을 20그릇이나 먹다가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리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주류 언론이 만든 선거 관련 뉴스는 페이스북에서 730만건 공유되었다. 반면 출처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는 870만건이 공유되었다. 공유된 가짜뉴스는 물론 친트럼프, 반힐러리 콘텐츠였다. 그런데 이 가짜뉴스의 진원지를 추적해보니 미국 본토가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벨레즈라고 하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가짜뉴스의 생산자들은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아니라 광고 수익으로 돈을 벌기 원했던 10대 청소년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관종은 관심 받고 싶어하는 개인에서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크리에이터로 변화하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든 대중적인 것이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까닭은 타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내면에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 바로 사랑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주의를 쏟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깊이 사랑할 때 그들은 온 세상을 잊는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완전히 몰입해 있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때 그 밖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마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몰입의 순간 그들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 이렇듯 사랑의 빈자리를 손쉽게 메우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을 안다. 우리는 직접 우리 자신의 존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에게로 간다. 분리된 존재로서의 내가 나임을 기억하는 것, 거기서 나의 고통이 시작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를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나로부터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근원적인 좌절감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 근원적인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타인에 대한 완전한 사랑밖에 없다. 완전한 사랑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자아가 고통이기 때문에 무아가 되면 행복해진다. 무아지경이 바로 황홀한 행복이다. 자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밖으로 나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사람을 돕고 보살펴라. 우리가 행복해지는 비결은 타인에게 있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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