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디테일에 대한 단상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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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18   |  발행일 2021-11-18 제23면   |  수정 2021-11-18 07:12

[영남타워] 디테일에 대한 단상
이창호 중부지역본부장

'디테일(detail·細部)'을 생각한다. 근자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떠오른다. 지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다. 그는 토론 때마다 상대 후보의 혼줄을 뺐다. 정책의 구체적 내용·실현 가능성을 취조하듯 집요하게 캐물었기 때문이다. 홍준표 의원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든 '수소는 뭘로 만드냐'는 질문은 일약 유행문이 됐다. 유튜브에선 '대장동 의혹 1타 강사'로도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는 얽히고 설킨 내용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초등생도 이해하기 쉽도록 도표를 곁들여 가며….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다운 디테일의 소유자였다. 만약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됐다면 어떨까. 본선 이재명 후보와의 싸움이 꽤나 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지지율은 낮았지만 그는 '한 방'(전투력)은 물론 디테일까지 갖췄다. 원희룡의 재발견이다.

대통령이 디테일 만능주의자라면? 마냥 최선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과거 MB정부 때다. 당시 장관 상당수는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신바람나게 일하는 이를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대통령에 있었다. 자신만의 디테일에 빠졌기 때문이다. 장관들에게 시쳇말로 '군기를 잡고' 세세한 것까지 캐묻고 주문하고 질책하기 일쑤였다. 장관이 대통령을 대하기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정책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대통령이 디테일을 꿰차고 있더라도 그걸 무기로 각료를 핸들링해선 곤란하다. 대통령은 장관들이 국정 목표를 완성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된다. MB는 자신이 아닌 장관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었어야 옳았다. '대통령의 디테일'이 결코 능사가 아닌 예라 하겠다.

디테일은 양날의 칼과 같다. 넘치면 독이지만 시의적절히 활용하면 완성을 이끄는 보도(寶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가 필요하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디테일의 끝판왕'이었다. 누구를 만나든 상대의 성격·어투·인상은 물론 이른바 '최애 음식·관심사' 등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 기록했다. 퇴임 후 자서전에서 고백한 얘기다. 이 같은 디테일은 그를 '성공한 지도자'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친근한 이미지의 메르켈 독일 총리도 통계·메모 등 탁월한 디테일로 오랜 세월 리더십을 지켰다.

윤석열 후보 대(對) 이재명 후보의 대선판을 보자. 여기도 디테일을 둘러싼 치열한 기싸움 장이다. 최근 이 후보가 윤 후보에게 '일 대 일 정례 토론 회동'을 하자고 했다. 왜 제안했겠나. '국면전환용'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후보 스스로 디테일에선 우위에 있다고 판단,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 아니겠나. 최근 잦은 실언에도 그의 언어구사 능력은 보통이 아니다. 적어도 '입 대결'에서 만큼은 자신있어 하는 표정이다. 윤 후보는 이 후보의 이 같은 '갑훅(갑자기 훅)' 행태를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 내년 대선 레이스에선 일 대 일·다자 토론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윤 후보는 그 준비가 돼 있는가. 갈수록 나아지고 있지만 그의 디테일은 여전히 빈틈이 많다. 디테일 제고는 윤 후보에게 시급한 숙제다. 우선 정치·경제·외교·국방에 대한 무지(無知)를 메워야 한다. 다음은 간혹 핵심을 제대로 못짚는, 2% 부족한 화술을 고쳐야 한다. 전문가 그룹의 '속성과외(速成課外)'도 불사해야 할 판이다. 본선 토론에서 상대의 디테일한 질문에 디테일한 즉답을 할 수 있는 길이다. 아울러 고언(苦言)·직언(直言)하는 이를 주위에 많이 둬야 한다. 판단력과 용인술의 디테일을 키우는 첩경이다. '신도, 악마도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 이재명의 본선 '디테일 격돌'이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창호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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