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아몬드 농장과 공로자 묘역

  •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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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06   |  발행일 2021-12-06 제26면   |  수정 2021-12-06 07:18
학생수 감소·등록금 동결로
지방대 심각한 재정난 봉착
대가대 '공로자묘역' 조성해
대학발전기금 기부자 예우
재정 탄탄해야 교육 질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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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미국 하버드대학교는 아몬드 시장 가격이 좋을 때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 있는 180만평의 농장에서 아몬드 농사를 지었다. 하버드대는 호주의 사탕수수 농장과 뉴질랜드의 젖소 목장을 소유한 적도 있다. 하버드대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투자사는 대학 기금으로 투자 수익이 높은 곳에 투자를 해 기금을 늘린다. 최근 들어 하버드대를 비롯해 예일대·브라운대 등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도 사들이고 있다.

기부금을 내고 입학하는 '기여 입학제'와 활성화된 대학 기부 문화 등으로 미국 대학들의 기부금 펀드 규모는 엄청나다. 하버드대의 기부금 운용사인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가 운용하는 기금은 45조원을 넘는다. 미국 사립대들은 이를 통해 얻는 안정적인 수익을 장학금과 연구개발(R&D)에 투입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인다. '기여 입학제'도 없고 대학 기부문화도 열악하며, 13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한국 대학들에 이는 꿈 같은 이야기다. 올해 하버드대의 기부 적립금은 63조원, 예일대는 50조원에 달한다. 국내 사립대의 적립금 전부를 다 합쳐봐야 기껏 10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학생 수 감소, 등록금 동결 등의 여파로 한국의 대학, 특히 지방대학들은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하고 있다. 많은 지방 대학이 재정 위기를 벗어나고자 모아둔 적립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은 적립금조차 바닥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지방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고등교육 전체 생태계 차원의 문제다. 지방대학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 지방대학의 몰락은 지방의 경제·문화에 타격을 주어 지방공동화로 이어지고 국가균형발전에 심각한 저해를 초래한다. 지방대학이 사는 방법은 교육의 대상과 방법을 바꾸는 길밖에 없다. 고3 학생이 줄어드니 지역민을 위한 평생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직업의 생명주기가 빨라지고 한 직업으로 평생 살 수 없는 평생학습시대에서 생애주기별 교육과 재직자교육 등 평생교육을 수행하는 플랫폼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디지털 학습사회에 맞춰 대학은 온라인의 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커리큘럼과 교수도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시설도 투입되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환경 조성에는 많은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 대부분을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대학들은 학생 충원율 하락과 등록금 동결 장기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니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과 연구를 위해 대학들은 기금 확충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대구가톨릭대는 기금 모금 활성화를 위해 가톨릭군위묘원에 기부자를 위한 '공로자 묘역'을 조성한다. 발전기금 1억원 이상 기부자가 별세할 경우 묘지를 제공하고 관리까지 맡는다. 1억5천만원 이상 기부자는 배우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기부자의 기일에는 추모미사도 봉헌한다. 이와 함께 평생교육원과 외국어교육센터 이용 할인, 명패·핸드프린팅·얼굴 부조·흉상 보존, 건물 및 특정실 명명, 대구가톨릭대병원 건강검진 및 본인부담금 감면 등으로 발전기금 기부자를 예우할 계획이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에는 전 세계 대학의 50%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든든한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학이 존립 문제에 허덕이면서 4차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교육과 연구에 힘쓰기는 어렵다. 재정 투명성 강화 노력과 난방 사용을 줄이고, 낡은 건물의 수리를 미루는 등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을 살리고, 지방을 살리고, 국가를 살린다는 절박함으로 대학들이 기금 확충에 머리를 싸매야 하는 이유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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