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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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31   |  발행일 2021-12-31 제39면   |  수정 2021-12-31 09:08
달 한가운데 버려진 발해기지로 특수임무 수행하러 떠난 정예 대원들
자원 고갈로 황폐해진 미래지구 배경
폐쇄된 우주공간 재현·심리에 초점
극한의 상황서 '인간의 선함' 다뤄
불시착한 착륙선·비밀 품은 기지 등
우주 주요 공간 완성도에 심혈 기울여

공간1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미지의 영역인 달과 우주로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필수 자원이 고갈돼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최초의 달 탐사기지였으나 5년 전 영구 폐쇄된 발해기지로 특수 임무를 수행하러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다. 앞서 임무에 가담했던 이들은 그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못했고 그날의 사고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채 모든 것이 기밀에 부쳐져 있다.

2014년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은 최항용 감독의 동명의 단편 영화가 원작이다. 폐쇄된 우주 공간 재현과 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37분 동안 진행된 원작은 높은 완성도로 극찬을 받았다. 최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달을 배경으로 한 SF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았지만 달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지만 의외로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최항용 감독과 영상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인연을 시작한 박은교 작가는 그렇게 완성된 단편 영화를 먼저 볼 기회가 있었다. 박 작가는 "미스터리가 풀려가는 방식이나 호흡, 여러 가지 면에서 놀랍고 흥미로운 단편이었다"며 "기본적으로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세계관이었기에 단편에서 장편으로, 또 장편에서 시리즈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를 구체화시킨 건 배우 정우성이다. 최항용 감독의 단편 영화에 매료된 그는 "한 영화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데 있어 설정이라는 작은 요소가 많은 걸 좌지우지하는데 원작의 독특한 설정이 굉장히 신선했다. SF 장르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공간 달, 그 안에 세워진 발해기지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라면 충분히 한국적인 SF 장르물을 시도해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정우성은 2016년 개봉한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 이어 다시 한번 제작자로 나섰다. 그리고 작품이 가진 가치 그대로를 알아봐준 넷플릭스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고 장편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작은 원석을 가공해서 반짝이는 빛의 확산을 어느 정도까지 하느냐, 어떤 색으로 빛나게 하느냐를 노력과 열정으로 채우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누구보다 적임자인 최항용 감독과 박은교 작가에게 시리즈의 연출과 각본을 맡겼다.

최항용 감독은 "단편에서는 하지 못해 아쉬웠던 것들을 구현할 수 있어서 좋았고 10년 이상을 품고 있었던 자식 같은 작품이 좋은 기회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단편이 기지 안의 사건에만 집중했다면, 시리즈에서는 지구의 상황을 보여주며 달에서 겪는 사건에 더 큰 의미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며 "자원이 부족한 지구의 환경과 사람들의 모습 등 단편 영화에서 다 풀어주지 못했던 세계관을 8부작 시리즈를 통해 보여 준 만큼 미스터리를 한 꺼풀씩 천천히 벗겨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요의 바다'는 달 한가운데에 버려진 발해기지가 주 무대다. 그곳에서 예기치 않게 위험에 빠진 대원들의 생존을 다룬 이야기지만 더 나아가 지구와 인류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악한 모습을 주로 보여줬던 여타 이야기들과 달리 인간의 선함에 방점을 찍고 이를 믿고 행하는 모습에 천착한다. 박은교 작가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공간에 가서 생존에 대한 가치·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류 전체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나의 행동과 인류가 나아갈 길을 선택하게 될까. 결국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우주와 달이 공간 배경인 만큼 또 다른 관건은 이를 채울 VFX와 세트의 완성도다.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었다"는 제작자 정우성의 말처럼 '고요의 바다'가 무사히 달에 착륙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한국인 누구도 밟아본 적 없는 달과 달 표면을 구현해내야 했다. 제작진은 NASA에서 공개한 자료들을 학습하며 월면의 질감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살려냈고, 극 중 상황에 따라 디자인에 변주를 주며 다양한 환경을 구축했다. 또한 필수 자원이 고갈된 지구, 불시착한 착륙선, 비밀을 품고있는 발해기지 등 주요 공간의 완성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VFX를 담당한 웨스트월드 김신철 수퍼바이저는 "SF지만 근미래가 배경인 만큼 실제로 그릴 수 있는 미래, 더 현실감 있고 담백한 CG 작업을 전반적인 콘셉트로 잡았다"고 전했다. 특히 인상적인 기법 중 하나는 LED Wall 작업이다. 기존에 수많은 촬영들이 블루스크린에 의존했다면 LED Wall 작업은 실제 구현될 공간을 LED를 통해 직접 보면서 촬영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주로 달 지면 세트를 보완하기 위해 드넒게 연장된 달 지면을 구현하는 데 활용되었는데, 이를 위해 VFX팀을 비롯한 모든 주요 제작진의 협력이 필수였다. LED 화면 안에 달 표면의 바위를 디지털 스캔해 크기와 형태를 변형해 배치하고 미술 세트와 LED Wall의 배경을 연장하는 접점을 만들고 톤을 맞춰가는 작업이 이뤄졌다.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LED Wall은 현장의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배우들은 이구동성으로 "블루스크린을 보고 연기하는 것보다 실제와 흡사한 화면을 보며 연기한다는 것이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LED Wall은 실제로 구현될 장면을 보면서 더욱 몰입감있게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후반 작업의 기간을 일부 줄여주기도 했다. 박은교 작가는 "SF 장르가 도전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게 축적된 경험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이게 과연 구현이 될까, 이 정도로 나가도 될까'라며 스스로 반문하고 검열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이니 구현이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규모가 큰 세트가 완벽하게 지어졌다. 정말 놀랐고 행복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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