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삶의 문화를 살피는 디자인 "일상과 동떨어진 이벤트성 디자인 문화엔 미래가 없다"

  • 정재완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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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1   |  발행일 2022-03-11 제36면   |  수정 2022-03-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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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글자풍경' 전시장 모습.
◆디자이너, 문화 생산의 주체

1960년대 대통령은 '미술수출'이라는 휘호를 써서 디자인이 수출을 위한 것임을 규정했다. 디자인은 국가 주도의 산업진흥정책을 위한 '포장'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됐고, 그동안 우리의 디자인 교육도 이런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를 겪으며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대기업 홍보실은 구조조정 1순위였다. 기업경영의 위기 상황에서 홍보는 나중에 해도 그만이고 좋은 제품은 광고를 하지 않아도 알아준다는 믿음이 유효했던 시절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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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친필 휘호 '미술수출(美術輸出)'.
20세기 디자인 '미술수출' 수단 불과
새 협업 통해 변화 맞은 디자이너들
기업 벗어나 문화예술 무대로 이동
디자인 특정 직업군 향유 대상 아냐

일상서 자생적으로 생긴 '거리글자'
도시의 소중한 디자인 문화 자산
삶과 어우러진 방향성 추구해야


2000년대 들어서면서 디자인 생태계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형태의 협업 방식이 만들어지고 디자이너들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업 일변도의 클라이언트로부터 벗어나 문화 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수가 많아졌다. 

다만 이런 움직임은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하는 젊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여기에는 부작용도 따랐다. 젊음을 담보로 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디자인 결과물이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해진 반면, 노동의 대가는 하향평준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디자이너가 문화예술의 협력자가 되고, 관료주의적 국가주도 디자인 담론을 넘어서 문화 콘텐츠 생산의 주체가 된 점은 분명한 변화의 물결이었다.

문화는 소수 엘리트에 의해 만들어지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디자인 문화라는 것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특정 직업군이 만드는 것이라는 오해는 하지 말자. 디자인 문화는 디자인을 만들고 그것을 향유하는 공동체의 정신과 행위의 결과물이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관료와 대학교수, 그리고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이 되어버렸을 때, 디자인은 정작 우리의 삶과 거리가 멀어진다. 디자인이 보통의 삶 속에 있지 않고 잠깐의 구경이나 체험하는 수준의 '이벤트'가 된다면 디자인 문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을 살피는 데에서 디자인이 시작될 수는 없는 걸까.

◆거리글자, 도시의 디자인 문화 자산

대학에서 배운 '타이포그래피'라는 전문 용어는 견고한 벽을 세우는 일이었다. 글자를 다루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모두의 일인데, 엘리트 교육을 받은 소수 디자이너들이 글자를 점령해버렸다. 

평소 글자의 생태계에 관심을 갖던 나는 거리글자를 통해 디자이너가 어떻게 도시 문화에 접근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리글자는 내가 열심히 세웠던 벽을 허무는 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길

을 걸으면서 만나는 거리글자는 (나에게는) 영감의 원천이다. 대자연을 만나기 위해 우거진 밀림이나 초원, 극지방에 가듯이 디자인을 만나기 위해 거리를 걸어 다녔다. 거리글자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표정과 의미, 그리고 시간의 흔적은 실로 경이롭다. 

건물 간판, 외벽 광고 시트지, 교통표지판, '주차금지' 구조물, '일방통행' '어린이보호구역' 바닥 글자처럼 공적 영역에 놓인 글자도 있지만, '소변금지' '개조심' '담배꽁초 버리지 마시오'처럼 사적 영역에서 개인이 직접 손으로 쓴 서툰 글자도 있다. 

거리글자는 늘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과 형태를 보여준다. 거리글자에 공존하는 친밀감과 낯섦은 글자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극단까지 몰고 간다.

거리글자는 문자가 가진 의미전달 기호로서의 기능을 훨씬 넘어선다. 클리포드 기어츠의 말처럼 거리글자는 두꺼운 묘사다.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글자는 우리가 보통 읽고 쓰는 글자들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아름답든 흉측하든 거리 글자는 당당하다. 

거리글자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를 멈춰서게 만들고 호통치기도 한다. 연약하고 노쇠한 글자도 있고, 이제 막 삶을 시작한 글자도 있다. 수줍어하는 글자도 있고 용감하게 고백을 하는 글자도 있다. 뻔뻔한 글자도 있고 지나치게 격식을 갖춘 나머지 무심코 흘러가는 글자도 있다. 

거리글자는 다양한 목소리를 품는다. 그래서 거리글자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자주 가는 골목에서 만나는 글자는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지만, 처음 가는 골목 글자와 나 사이에는 어떤 긴장감이 흐르기도 한다.

◆북성로 글자풍경

거리글자는 당연하게도 토착성을 품은 버내큘러 디자인이다. 거리글자는 처음 만들어지는 것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우고 첨가하고 고치고 풍화된 흔적, 즉 시간의 흔적이 투명하게 반영된 것이다. 거리글자를 통해 우리는 그간의 사연을 유추할 수도 있다. 

몇 해 전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의 제안으로 북성로 거리글자를 기록한 적이 있다. 북성로의 간판 글자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공업사 사장님들을 인터뷰했다. 북성로의 간판 글자는 어쩌면 북성로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북성로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는 저장장치와도 같았다. 

나는 전시장 벽면을 책의 펼침면으로 연출하고 북성로 글자를 수집하면서 사진을 추가하는 진행형 전시 '북성로 글자풍경'을 기획했다. 전시 기간 중에는 북성로를 연구한 인류학자, 도시사회학자, 디자이너, 출판기획자 등과 함께 워크숍을 열면서 북성로의 거리글자를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전시가 마무리될 즈음 거리글자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일상의 문화와 디자인

한번은 서울 을지로 골목에 즐비한 붓글씨 간판에 호기심이 생겼다. 을지로는 대구 북성로와 닮은 꼴이다. 도심 한복판에 적산가옥이 즐비해 있고, 공업사와 공구가게가 밀집해 있다. 

이곳 간판들은 수십 년 전에 무명의 서예가가 쓴 것이다. 페인트 붓으로 굵직하게 써 내려간 글씨는 당시의 간판 제작 기술과 미감을 반영하고 있다. 여쭤보니 간판 글자 값을 얼마 지불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장님들은 안계셨지만, 서예가가 자전거 타고 골목을 지나면 글자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고 막걸리 좀 받아다줬다는 사실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일과 일로서의 거래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에서 만들어진 글자 문화다. 안타깝게도 을지로와 북성로 같은 근대 산업시설은 도시 정비사업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업들은 대부분 도시의 디자인 문화 자산을 위협한다. 나로서는 영감의 원천인 거리글자가 파괴당하고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글자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소중한 디자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3월11일은 돌아가신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기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지자체가 시골의 오래된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중 시골 마을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니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시설이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한 달에 한 번 봉고차를 빌려서 도시에 나가 단체 목욕을 하고 오신다니, 목욕탕이나 하나 지어달라는 말에 건축가는 화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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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폐교 한 공간에 마련된 목욕탕에서 짝숫날에는 할아버지들이 홀숫날에는 할머니들이 편안하게 마음껏 목욕을 하신다. 이 장면은 우리의 디자인이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삶의 문화를 살피는 디자인이다.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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