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말뫼의 눈물'에서 '내일의 도시'로

  •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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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30   |  발행일 2022-03-30 제26면   |  수정 2022-03-30 07:13
스웨덴 말뫼 '코콤스 크레인'
조선업 침체로 한국에 매각
정치인과 시민 대변화 합의
친환경 지식산업도시로 변모
도시의 운명은 시민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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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북유럽 발트해 입구에는 외레순드 다리가 있다. 코펜하겐과 말뫼를 이어주는 16㎞의 이 다리는 말뫼의 스웨덴 쪽 바다 위로 다리 형태가 보이지만 갑자기 사라진다. 4차선의 도로와 복선철도가 지나가는 넓은 다리지만 중간에 인공 섬을 만들어 지하터널로 연결했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산업 구조조정의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역은 '말뫼의 눈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조선업의 성공으로 말뫼의 기적을 상징했던 코콤스 크레인이 2002년 1달러에 한국으로 팔려 떠나가던 날 말뫼 시민들은 울었다고 한다. 우리가 만든 이 표현은 크레인을 사 온 우쭐한 마음을 담아 경쟁력을 잃어버린 조선업에 대한 말뫼 시민의 후회로 해석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크레인을 매각했던 당시 말뫼는 10년 전부터 고부가가치 산업을 위해 대변신을 시도했고 상당한 성과도 거둔 상태였다. 코콤스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는 2005년 190m의 친환경 건물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가 말뫼의 상징물로 들어섰다. 말뫼의 눈물은 도시와 함께해왔던 상징물에 대한 아쉬움이지 조선업의 경쟁력 상실에 대한 후회는 아니었다.

1840년 말뫼에 설립된 코콤스는 오랫동안 세계 최대 조선소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중반 아시아의 추격이 계속되자 코콤스는 1974년 1천600t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크레인을 만들어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 크레인은 불과 75척의 배를 건조하는 데 그쳤다.

1980년대 중반 스웨덴 전체에 경기후퇴가 시작되자 조선업의 상징이었던 코콤스는 1987년 마침내 파산했고 덴마크회사에 팔린 크레인은 외레순드 교각 설치를 마지막으로 멈추어 섰다. 당시 말뫼 시민의 15%인 3만5천명이 도시를 떠났고 실업률은 15%를 넘었다. 그러자 정치인과 시민들은 말뫼를 조선업 중심지에서 친환경 지식산업 도시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우선 외레순드 다리를 통해 광대역 케이블을 설치하고 스웨덴과 유럽대륙을 연결했다. 조선소 부지를 창업지원센터로 바꾸고 신재생 에너지, IT 산업 등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1998년 첨단 친환경 도시를 위한 산학연의 중심으로 말뫼대학을 설립했다. 조선소를 재개발해 2001년 '내일의 도시'를 주제로 도시건축박람회(Bo01)를 열어 말뫼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제시했다.

오늘날 말뫼는 가장 역동적인 도시가 되고 있다. 조선업에 투자했던 자금을 신재생에너지와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 집중 투입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곳은 태양열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했다.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는 창업센터와 첨단 친환경건물로 가득하다.

말뫼의 지속성장은 경쟁력을 잃은 조선업에서 ICT를 중심으로 한 지식산업으로 변모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말뫼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내일의 도시'이며, 2050년 인구는 지금의 두 배에 가까운 5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몇 년 전 말뫼 해변에서 만난 어른의 말씀이 지금도 또렷하다. "도시의 운명은 그곳에 사는 시민들이 결정한다."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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