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가상인간 유감

  •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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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1  |  수정 2022-05-11 08:56  |  발행일 2022-05-11 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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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2014년 5월 개봉한 영화 'her'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인 사만다와 대화하고 교감하고 결국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아내와 별거하고 외로움을 느끼고 공허한 삶을 보내던 주인공은 진짜인간이 아닌 가상인간(virtual human)을 통해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찾는다. 다만, 사만다는 주인공 말고도 8천명이 넘는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는 점과 그동안 테오도르에게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주인공을 떠난다.

이처럼 인공지능과의 연애라는 소재를 다룬 이 영화가 현실화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젠 이미지는 물론 비디오, 음성까지 인간과 꼭 닮은 가상인간이 광범위한 분야에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인간이란 인공지능,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만들어낸 온라인 공간상의 인물을 말한다. 3D그래픽 등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잇는 가상인간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활용 분야도 게임,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홍보, 유통, 교육, 헬스케어,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가상인간으로는 미국의 릴 미켈라(Lil Miquela)가 있다. 패션 인플루언서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미켈라는 303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1년 예상 수익이 130억에 이른다. 타임지에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2세로 광고모델, 인플루언서, 가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지(rozy)가 있는데, 100건 이상의 협찬 및 15억원 이상의 광고수익을 내고 있다.

다만, 사람이 아닌 로봇이나 아바타 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에 따르면 로봇 등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할수록 인간의 호감도도 증가하지만, 닮은 정도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강한 거부감을 유발하며, 이후 사람과 더 비슷해지면 다시 긍정 반응으로 바뀐다고 한다. 즉, '인간과 흡사한' 로봇과 '인간과 거의 똑같은' 로봇 사이에 존재하는 로봇의 모습과 행동에 의해 느껴지는 거부감을 의미한다.

나아가 가상인간은 진짜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광고모델의 경우 컴퓨터 그래픽으로 모든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구설수로 광고매출이 떨어질 위험도 없다. 이제 인간이 가상인간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인간이 사물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소외의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또한 가상인간의 대부분이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제작되어 성범죄 및 성적 평가의 대상으로 노출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성희롱, 성추행 등 사이버 범죄의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얼굴, 신체를 합성해 조작하는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을 이용하여 가짜 뉴스 유포, 사기 등 금전적 피해, 음란물 제작에 악용 등의 폐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가상인간을 만들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경제적, 산업적으로는 장점이 있지만, 온라인 범죄에 악용, 인간성 상실, 일자리 감소 등의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가상현실, 가상인간, 가상자산 등 가상적인 것이 대세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공간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적 존재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가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상인간이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고지하도록 하는 것 외에도 가상인간의 도입과 활용에 있어서 필요한 자율규제 원칙을 논의해야 할 때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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