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마음의 길

  • 곽호순 곽호순병원 원장
  • |
  • 입력 2022-11-08 07:27  |  수정 2022-11-08 07:35  |  발행일 2022-11-08 제16면
처음 걷는 자에겐 두려움이자 용기
중요한 것들은 굽은 길에서 이뤄져
천천히 갈 순 있어도 건너뛸 순 없어
앞으로의 이정표 없지만 모두 옳아

곽호순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길이 있습니다. 물은 물의 길이 있어 그 길로 흐르고 바람은 바람의 길이 있어 그 길로 흩어지듯, 우리는 인생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걷습니다. 마음이 같이 걷습니다.

처음의 길들은 여러 갈래였습니다. 길들은 다 달라 보이고 길마다 걸음 하고 싶었습니다. 길에서 사는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길은 다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모든 길이 다 처음 길이었습니다. 길은 처음 걷는 자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용기였습니다.

길은 항상 나보다 한 발자국 먼저 가 있었습니다. 길이 나를 이끌었지 내가 길을 앞서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길은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훗날 알았습니다. 걷는 자는 자기 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든 길은 다 이어져 있습니다. 수 갈래 길들이 만났다 헤어지고 어긋났다가 따라옵니다.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천둥과 눈보라와 그리고 무서리를 만났는지요. 때론 두려움에 숨고 싶었지만 길에서 이들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온몸으로 받았습니다. 눈보라 끝에 봄 아지랑이를, 천둥과 무서리 지나고 비로소 가을 가득 찬 들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커갔습니다.

많은 길은 굽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들은 굽은 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발뒤꿈치 들어야 하는 첫사랑의 입맞춤도 굽은 골목길에서, 마음을 베이고 돌아서는 서러운 이별도 굽은 골목길에서 일어났습니다.

곧고 넓은 길은 직선이라 모퉁이가 없었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떤 일이 있을까에 대한 설렘도 없었습니다. 굽은 길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배웠습니다.

마음에 드는 길을 천천히 걸어 볼 수는 있어도 길을 건너뛸 수는 없었습니다. 길에서 길을 벗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길은 항상 내 앞에서 나를 기다렸지 내가 길을 이끌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분간할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법 긴 길을 걸어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을 뛰어간들 먼 산이 갑자기 확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요령껏 언저리를 걸어도 지름길은 없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길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면 당장 일어나기보다는 바닥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을 일입니다. 길이 토닥토닥 위로해 줄 겁니다. 길이 두 팔로 꼭 껴안아 줄 겁니다. 언제 길이 한 번이라도 넘어진 당신을 받아주지 않은 적이 있던가요? 당신 마음이 닫혀 있었지 길이 닫힌 적이 있던가요. 길은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길을 탓합니다. 길은 늘 열려있습니다.

길을 걷지만 아직도 길에서 길을 묻습니다. 여전히 길 안에서 길을 찾습니다. 먼저 간 이들은 지금의 그 길이 맞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합니다. 누구나 다 이 길이 그 길이며 길은 하나뿐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러나 나는 외길에서 헤맵니다. 그렇게 긴 길을 걸어왔어도 또 길을 잃습니다. 길을 먼저 알고 가는 이는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길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라는 것도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었어도 정상으로 갈수록 길은 모입니다. 지나온 길들은 표식이 없었고 앞으로의 길은 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이정표가 없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이 길이 맞다는 것을 압니다. 길에서 길을 배웁니다. 모든 길은 옳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마음이 고개를 숙입니다.

결국 나는 여기까지 왔고 나를 데리고 온 길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길은 그저 그 자리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길 끝에 다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따라 조용히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찬란한 노을이 그 배경이 되어 줍니다. 비로소 마음이 잘 익어 갑니다.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기자 이미지

곽호순 곽호순병원 원장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건강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