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41)] 이영규, 대구 연극 부흥의 주역…제작과정 자료화 노력도

  •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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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2 07:25  |  수정 2023-01-12 07:31  |  발행일 2023-01-12 제16면
대구시립극단 정체성 확립에 심혈…지역작가 작품·대형작품을 마임 등 다양한 기법으로 연출
"스태프에 감사한 마음으로 작품 해야" 배우가 연극 중심이란 자만 지양하고 신인 발굴 위해 직접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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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극단 초대 예술감독을 지낸 이영규(1948~2006)는 대구 연극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다. 1970년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응모해 입상했다. 대구 연극계와의 인연은 1985년부터다. 극단 '우리무대'의 공연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의 연출을 맡으면서다. 1986년에는 극단 우리무대 대표를 역임했으며, 1991년에는 극단 일봉을 창단해 대표를 맡았다. 이후 다양한 무대를 연출하며 대구 연극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1998년 대구시립극단 창단, 초대 예술감독 선임

1998년 대구시립극단이 창단한다. 인천·경기도·서울·부산시립극단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 시립극단이었다. 이영규는 그해 8월 '초대 예술감독'으로 선임된다. 당시 그는 "지역 연극인들의 재교육과 신인 발굴로 시립극단이 이른 시일 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향토작가의 작품을 과감히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이영규는 예술감독에 선임된 후 시립극단의 '정체성'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배우 선발' '출연료 지급' 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배우 선발'은 '오디션'을 당연시했다. 오디션에서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을 경우 민간 연극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캐스팅을 하기도 했다.

'출연료'는 당시 민간극단에서 상상할 수 없던 수준으로 책정했고, 출연료 지급을 위한 계약서 작성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출연료를 지급할 때는단순히 '선후배 순서'가 아닌 '배역 비중'에 따라 수준을 달리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는 배우들도 나타났다. 선후배 구도를 무시하는 방식이라며 중도하차를 하는 배우가 속출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특히 이영규는 '스태프'를 중시했다. 스태프도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또 배우들에게 연극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스태프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작품에 참여하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모든 작품의 제작과정 및 공연 등을 자료화하는 데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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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극단 창단공연 '무지개' 공연 모습. <대구시립극단 제공>

◆대구시립극단 창단공연 '무지개'

대구시립극단이 창단되던 해에 가장 큰 고민은 '창단일' 확정이었다. 적절한 날짜를 고민하던 중 시립극단의 첫 작품을 올리는 날짜를 창단일로 정하기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영규는 창단공연 작품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창단공연은 시립극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에 고전 명작보다는 지역작가의 작품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선택된 작품은 향토작가 이만택씨의 희곡 '무지개'였다. 당시 이영규는 '무지개'를 창단공연작으로 선정하며 지역작가의 작품을 올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향토연극계의 저변 확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대구 시민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제작을 통해 대구시립극단 정체성을 확립하길 원했다.

이영규는 창단기념공연을 앞두고 당시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극단의 공연과는 다른 '프로'의 냄새가 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면서 "작품 배경의 경우 영양군 일월산 일대에 남아있는 화전민촌을 카메라에 담아 제작했으며, 대사는 대구 인근 사투리를 사용해 지역 정서에 맞췄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창단기념공연은 1998년 12월4일부터 5일까지 양일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으며, 총 4회에 걸쳐 관객과 만났다. 예술감독 겸 연출에는 이영규, 작곡은 장명화가 맡았고 이송희·이동학·손현주·손성호·이경자 등이 출연했다.

연극 '무지개'는 경상도의 어느 화전민 '부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문명 세계를 등지고 감자·옥수수로 연명하며 자연인으로 생활하는 마을 사람들의 애욕과 갈등을 그렸다. 20년 동안 징용 간 아들을 기다리는 월산댁, 두메산골의 적막함에 몸부림치며 도시로 나가고 싶은 태식, 그런 태식을 사랑하는 이뿐이, 대도시에서 온 염세주의자 백운 선생 등이 등장한다. 해당 공연은 이들의 사랑과 야망, 좌절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장엄한 드라마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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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극단 제2회 정기공연 '우리 읍내(Our Town)' 공연 모습. <대구시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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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규 예술감독이 연출한 대구시립극단 제7회 정기공연 '민중의 적' 모습. <대구시립극단 제공>

◆주요 연출·감독 작품 '우리 읍내' '감사관' '민중의 적' 등

이영규는 창단공연으로 향토성이 짙은 '지역작가' 작품을 올린 후 민간극단에서 제작하기 힘든 규모의 대형 작품을 기획했다. 또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선정하기도 했다.

손턴 와일더 원작의 '우리읍내(Our Town)'는 시립극단의 제2회 정기공연작이다. 이영규는 규모가 큰 작품을 제작해 대구 연극의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 우리 읍내는 1999년 4월8일부터 10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랐다. 작품의 원작은 기독교 문화가 바탕인 미국 중서부 도시를 배경으로한다. 그러나 이영규는 대구 인근 화원읍으로 작품 배경을 설정해 지역색을 높였다. 공연은 의사와 우체국장 집안의 아들과 딸의 성장과 사랑, 결혼과 죽음을 통해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이영규는 내레이터가 등장하는 서사극 형식으로 작품을 풀어냈다. 또 그림자 연극, 마임 요소 등 다양한 표현 기법도 선보였다.

시립극단의 제3회 정기공연인 '감사관'은 대중성을 고려해 선택한 작품이다. 앞선 공연인 '무지개'와 '우리 읍내'가 대중성이 부족해 관객들의 호응이 부족했다는 점을 고려해 해당 작품을 선정했다. 또 시립극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객원 연출(김삼일)을 초빙해 제작했다. 공연은 1999년 10월8일부터 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랐다. 당시 작품 제목을 검찰관으로 할 것인지 감사관으로 할 것인지 여러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작품은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 고골의 대표작이다. 지방의 작은 마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러시아 중앙정부를 풍자하고 있다. 김종대·채치민·손성호·최주한·이경자 등 30여 명의 시립극단의 배우들이 출연해 코믹하고 풍자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2001년 9월28일부터 2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시립극단의 제7회 정기공연인 '민중의 적'은 현실주의 연극의 진수를 보여 준 작품이다. 작품은 환경오염·집단 이기주의·집단 따돌림 등 문제를 다룬 헨리 입센의 사회극이다. 이영규는 "극 구성이 탄탄하고 반전이 많아 작품성과 재미를 두루 갖췄다"면서 작품 선택 이유를 밝혔다. '민중의 적'은 온천개발지역의 오염실태를 폭로하려는 한 의사와 개발 이익을 챙기려고 이를 저지하려는 지역주민들 간의 대립 문제를 다뤘다. 이영규는 헨리 입센이 노르웨이 작가인 점을 고려해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전통음악을 응용한 역동적인 음악을 통해 무대를 꾸몄다. 이외에도 '황태자의 첫사랑' '타이피스트들' '허생' 등의 작품을 연출·감독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참고자료=대구시립극단 20년사, 대구시립극단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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