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서울은 더 평등하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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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7  |  수정 2023-02-27 14:46  |  발행일 2023-02-27 제26면
대한민국 선거구제 모순 덩어리

4개 시·군, 1명의 국회의원만

영토주권 무시한 헌재 판결 지속

서울 수도권이 국회도 완전 장악

영토 대표성 가미된 공화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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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논설실장)

정치가 모순덩어리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도 얼토당토않다. 서울이나 대도시의 구(區) 단위에서는 갑·을·병으로 나눠 2~3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데 농어촌 지역은 딴판이다. '군위-의성-청송-영덕'처럼 무려 4개 군이 몽땅 합쳐야 국회의원 1명을 뽑는 곳이 전국에 수두룩하다. 강원도는 '속초-인제-고성-양양'을 비롯해 뭉치지 않으면 대표를 아예 배출할 수 없는 구조다. 어떤 복합선거구는 49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서울 면적의 8배에 달한다. 이게 과연 평등한가.

민주정 아래서 대표를 뽑는 원칙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1인 1표, 즉 표의 등가성(等價性)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즉 영토의 대표성이다. 1인 1표는 표의 평등이다. 인구비례에 따라 대표자 수 즉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숫자를 결정한다. 맞는 말이다. 이걸로 끝나면 불평등이 봉합되겠지만, 인간의 정치역사는 그렇지 않다. 근대 국가는 지역통합에 의해 탄생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지역별 이해가 달라져 통합했든, 대한민국처럼 통합된 뒤 갈등이 빚어지든, 지역의 이익은 늘 충돌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양원제이다. 미국 하원은 철저한 인구비례로 뽑지만, 상원은 50개 주(州)에서 차별 없이 2명씩 뽑는다. 하원을 통과한 법률은 상원을 거쳐야 한다. 상원에서 각 주는 영토주권의 원칙에서 똑같이 2표를 행사한다. 이런 구조를 가진 나라들이 숱하다.

우리의 선거구 획정이 사실상 '게리맨더링'이 된 데는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직결돼 있다.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농어촌 인구가 도시로 도시로 특히 서울 수도권으로 몰렸다. 당연히 표의 등가성에서 격차가 벌어졌다. 서울 시민 20만명이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면 그 4분의 1도 안되는 5만명 농촌에서도 똑같이 1인을 뽑았다.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비율을 위헌이라 판결하기 시작했다. 1995년 헌재는 그때까지 4대 1 편차를 위헌으로 보고 3대 1로 줄이라고 했고, 2014년에는 이것도 위헌이라며 2대 1로 줄일 것을 판시했다.

1996년 국회수첩을 보니 안동시는 갑·을 2명의 국회의원(권오을·권정달)을 선출했다. 의성만 해도 1명(김화남)을 독자적으로 뽑았다. 이게 헌재 판결이 거듭하면서 무려 4개 지역이 합쳐야 1인을 선출하는 기형적 상황으로 내몰렸다. 대한민국 영토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광역자치 경북도가 이제 고작 13명의 국회의원을 할당받는 사이, 수도권 경기도는 59명으로 늘었다. 수도권 인구는 이미 절반을 넘었다. 국회의석 50%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기업, 금융, 인구, 대학의 초집중에다 정치결정권도 수도권이 완전 장악할 것이다.

헌재 판결은 정치철학의 부재로 보인다. 기계적·법리적 해석에 매몰돼 지혜로운 민주정의 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헌재도 소수 재판관 의견을 통해 지역대표성을 심각히 훼손할 수 있다며 인구편차 축소에 반대하기는 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대한민국은 평등한데 서울 수도권은 더 평등함을 누리는 걸까. '더 평등한 모순'은 잘라야 한다. 당장 헌법을 고치든 특별법을 만들든 합리적 공화정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영토를 포기하는 공화정은 없다. 우크라이나가 수도만 방위하고 변방을 포기했다면 벌써 이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의 또 다른 게리맨더링이 나는 무섭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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