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폭염, 버마 그리고 잔인한 5월…괴물 폭염보다 더 뜨거운…군부 독재 축출의 열망

  • 정문태 방콕특파원·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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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0 08:36  |  수정 2023-05-10 08:36  |  발행일 2023-05-10 제24면
버마 시민들 망명 정부 전폭적 지지
1300억원 모아주고 130억 세금까지
미래 불확실한 채권 구매에도 참여
반기문 성명서 등 정국 해법 헛발질
살인 더위 속 민주진영 싸늘한 시선

FILES-MYANMAR-CONFLICT-COUP-REBELS
버마 소수민족 반군 단체인 따앙민족해방군(TNLA) 대원 2천 여명이 북부 샨주의 숲속 베이스캠프에서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맨위·가운데) TNLA 대원들이 샨주의 남산(Namhsan) 거주지역 근처를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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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소수민족 반군 단체인 따앙민족해방군(TNLA) 대원 2천 여명이 북부 샨주의 숲속 베이스캠프에서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맨위·가운데) TNLA 대원들이 샨주의 남산(Namhsan) 거주지역 근처를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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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소수민족 반군 단체인 따앙민족해방군(TNLA) 대원 2천 여명이 북부 샨주의 숲속 베이스캠프에서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맨위·가운데) TNLA 대원들이 샨주의 남산(Namhsan) 거주지역 근처를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44.6℃,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지난 타이의 딱주, 더 또렷이 말하자면 모에이강을 끼고 버마의 까렌주와 국경을 맞댄 매솟 언저리를 취재하면서 겪은 살인적인 폭염이었다. 타이 기상청 생기고 최고 기록이란다. 해마다 3~5월 건기면 늘 겪어온 40℃쯤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가만있어도 줄줄줄 땀이 흐르고 온몸이 축 처지는 것쯤이야 그렇다 치고, 이번엔 뇌가 아예 작동을 멈췄다. 30년 넘게 이 동네 살면서 폭염 면역성을 제법 키웠거니 했는데 웬걸, 일사병 문턱까지 다녀온 기분이고.

내 기억엔 2016년 북부 매홍손의 44.5℃가 그동안 최고 기록 아니었던가 싶은데, 올핸 타이 전역이 달포째 40~44℃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시달려왔다. 지난주 방콕은 체감온도가 55℃까지 치솟았다며 난리쳤고.

한데 이번 폭염은 타이만도 아니라고. 지난 4월부터 서쪽 파키스탄, 인디아, 방글라데시, 버마에서부터 동쪽 라오스, 베트남, 중국 남부,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온 천지가 40℃ 웃돌며 나라마다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고들. 이 '아시아 괴물 열파(monster Asian heatwave)'가 사라질 낌새도 없는 판에 전문가들은 서쪽 벵골만과 동쪽 필리핀해 사이에서 발생한 고기압대가 주범이니, 지구 온난화와 엘니뇨현상 탓이니 뻔한 말들만. 언제 지구 온난화, 엘니뇨가 이번처럼 기온을 급등시킨 적 있었던가! 이게 다가 아니다. 1990년부터 국제사회가 폭염으로 치른 비용이 6조달러, 우리 돈 7천800조원이란다. 뜬구름 잡는 소리에 열만 더 뻗칠 수밖에.

참 큰일이다. 또렷한 원인도 뾰족한 처방전도 없는 폭염이 인류사적 문제로 성큼 다가온 마당에 언제까지 휴교니 재택근무니 야외활동 제한이니 따위, 기껏 증상 치료로 맞설 것인지.

버마를 화두로 잡아놓고는 폭염 탓에 갓길로 새버렸다. 숨이 컥 막히고 답답한 건 폭염만도 아니다. 2021년 쿠데타 뒤부터 꽉 막힌 버마 정국도 마찬가지다. 으레 여기도 움직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헛발질들.

지난 4월24일 유엔 전 사무총장 반기문의 난데없는 버마 방문부터가 그랬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버마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린 민아웅흘라잉 국가통치평의회(SAC) 의장 초대를 덥석 받아 버마로 달려간 반기문은 "버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으로 모든 정파가 건설적 대화로 시작하길 촉구한다. (나는) 버마 국민의 평화와 번영, 자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하나 마나 한 아리송한 말을 성명서랍시고 날렸다.

민주 진영에선 곧장 거북함을 쏟아냈다. 망명 민족통합정부(NUG) 대통령 권한대행 두와라시라는 "자국민에게 잔학 행위를 저지른 폭력 정권을 반기문이 국제무대에 홍보해 주는 꼴이다. 아주 비윤리적"이라며 타박했다.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는 "2009년 유엔 사무총장 때도 반기문은 군부에 구걸하다시피 버마에 와서 아웅산 수찌도 못 만난 채 돌아갔다. 공식 직책도 아무 영향력도 없는 이가 왜 갑자기 나서나"며 불쾌함을 드러냈고. 아니나 다를까 군부는 반기문이 떠나는 25일 샨주의 병원 공습으로 화답했다.

같은 날, 4월25일 뉴델리에서는 버마 정국 해법을 놓고 버마, 인디아, 중국,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정부와 전문가란 이들이 비밀 회담을 열었다. 지난 3월13일 아세안이 줏대로 방콕에서 연 이른바 '트랙 1.5 다이얼로그(Track 1.5 Dialogue)'의 제2편이었다. 그러나 버마 시민이 전폭 지지하는 망명 민족통합정부가 빠진 이 '정체불명' 비밀 회담도 민주 진영에선 싸늘한 대접을 받았다.

"우린 국제사회의 개입과 도움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해법도 학살 군부가 아니라 버마 시민을 바탕 삼아야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민족통합정부 총리실 대변인 나이폰랏이 "그들만의 대화"라 불렀듯이.

실제로 트랙 1.5 다이얼로그는 정작 버마 정국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인 민족통합정부를 뺀 반쪽짜리 회담이었다. 비록 뉴델리 회담이 앞으로 민족통합정부도 대화 파트너로 삼겠다는 뜻은 밝혔지만 굳이 비공개 비밀 회담이 왜 필요한지조차 의문스럽기만.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을 감춘다는 건 아세안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버마 군부 눈치만 살피고 결국 군부한테 승리를 안기겠다는 뜻이다." 카레니민족진보당(KNLA) 부의장 에이블 트윗 말 그대로다. 그동안 유엔도 아세안도 군부 입장을 좇는 말잔치뿐이었다. 이게 쿠데타 뒤 지난 2년 동안 버마 시민이 받은 배신감이었고.

이제 현실 속에서 버마 시민사회의 폭발적 지지를 업은 민족통합정부가 빠진 버마 해법이란 건 없다. 민족통합정부는 2020년 11월 총선에서 뽑힌 상·하원 의원들이 2021년 2월1일 쿠데타에 맞서 결성한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굴대 삼아 정당, 시민단체, 소수민족이 함께 창설했다. 그게 2021년 4월16일이었다. 이어 타이와 국경을 맞댄 까렌민족연합(KNU)을 비롯한 소수민족무장조직 해방구로 숨어든 국민통합정부는 사제 무기를 들고 군부에 맞선 시민투쟁에 자극받아 5월5일 민중방위군(PDF) 창설로 반독재 무장투쟁을 선포했다.

현재 민족통합정부는 3개 사령부 아래 200~500 병력을 지닌 221개 대대 6만5천을 이끌고 있다. 그 가운데 25%는 M-16을 비롯한 정규군 무기로, 40%는 무기제조창 70여 개에서 손수 만든 사제 무기로 몫몫이 무장했다. 단기간에 자력으로 이만한 시민 군사조직을 꾸렸다는 건 세계 혁명전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소수민족해방군 가운데 최대 화력을 지니고 62년째 버마 정부군과 싸워온 까친독립군(KIA) 병력이 2만인 사실과 견줘볼 만하다.

흔히들 무장조직 덩치를 총값으로 가늠한다. 예컨대 요즘 버마 국경으로 흘러가는 M-16 소총 한 자루가 암시장에서 4천~5천달러까지 치솟았다. 1만 병력을 무장하는 데 어림잡아 600억원이 드는 셈이다. 여기에 실탄과 군장과 전비까지 보태면 1인당 곱하기 3으로 친다. 그걸 지하 망명정부가 해냈다는 뜻이다. 이건 그동안 망명 지하 민족통합정부를 버마 안팎 시민사회가 인정했다는 증거다. 지하정부는 시민 기부금뿐 아니라 스프링혁명특별기금채권, 스프링복권, 가상화폐거래(NUG-Pay)를 통해 전비를 마련했다. 군사령관 민아웅흘라잉의 랭군 집을 비롯해 군부와 그 족벌의 불법 부동산을 경매에 붙여 자금을 마련한 것도 지하정부의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였다.

"혁명채권이나 군부 소유 부동산 경매는 우리가 성공적으로 군부를 몰아낸 뒤 돌려줄 수 있는, 말하자면 미래를 담보한 불확실성에 투자한 셈이다. 게다가 330개 군구 가운데 우리 민중방위군이 점령한 48개 군구 시민이 군사정부 대신 민족통합정부에 자발적으로 250억짯(130억원) 세금까지 냈다. 이게 바로 우리 시민의 열망이다." 국경 은신처에서 처음 언론 앞에 얼굴을 내밀고 나와 마주 앉은 민족통합정부 기획·재무·투자부 장관 띤뚠나잉은 '시민의 열망'을 말하며 북받쳐 올랐다.

그렇게 버마 시민이 지하정부한테 모아준 돈이 1억달러, 우리돈 1천300억원이었다. 그 돈으로 지하 민족통합정부는 민중방위군에다 마을 단위로 조직한 민중방위팀(PDT) 250여 개까지 꾸려 학살 군부에 맞서왔다.

민아웅흘라잉이 쿠데타로 버마를 뒤집어 놓은 지도 2년하고 석 달이 지났다. 그사이 긴가민가했던 망명 민족통합정부는 버마 시민사회의 반독재 민주화 열망을 안고 그 나름 자리 잡았다. 비록 민족통합정부가 소수민족해방군의 불신감을 오롯이 걷어내지 못했고 버마 안쪽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시민군과 연대투쟁에도 한계를 드러낸 건 사실이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유일한 대안임은 틀림없다. 이름마따나 이제 민족통합정부의 성패는 버마 시민과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통합에 달렸다.

현재 버마에는 학살 군인독재자와 민족통합정부, 그 둘뿐이다. 버마 시민도 세계시민사회도 달리 택할 길이 없다. 국제사회가 줏대 삼아야 할 대상도 오로지 하나뿐이다. 버마 정국 해법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버마 시민의 열망이 그 답이다. 우리가 민족통합정부를 눈여겨봐야 하는 까닭이다.

2년 넘도록 온 나라가 전쟁에 휘말린 버마, 시민 무장투쟁으론 30만 정규군을 거느린 61년 묵은 군인독재를 단기간에 몰아낼 수 없는 현실 그래서 땅거미 지는 버마를 바라보는 맘이 폭염만큼이나 괴로운지도 모르겠다.

〈방콕특파원·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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