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연필의 무게 걸음의 무게] 조지 루카스…40여 년 '스타워즈' 대장정…영화산업 특수효과 시대 이끈 거장

  •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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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6 08:31  |  수정 2023-05-26 08:35  |  발행일 2023-05-26 제38면
초기작 'THX1138' '청춘 낙서' 흥행
제작사 루카스필름 설립 스타워즈 도전
완성도 위해 특수효과팀 'ILM' 결성
스타워즈 시놉시스 할리우드서 퇴짜
스트레스로 실어증…결과는 대성공
미국인 가슴에 신화가 된 영화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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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클론의 습격' 중에서.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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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시인)

1978년 여름, 고1이었던 나는 영화의 신세계를 만난다. 주말의 명화를 비롯하여 시험기간 말미에 주어지던 소위 문화교실까지 온갖 영화들을 나름 섭렵하던 나로서는 말 그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게 된 것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Star Wars)였다. 영화는 할리우드보다 1년 늦게 우리나라에 개봉되었고, 후속편 오리지널 트릴로지 3부작('에피소드4-새로운 희망' '에피소드5-제국의 역습' '에피소드6-제다이의 귀환'으로 부제가 붙여진다.) 중 '에피소드5-제국의 역습' 편은 수입배급비가 너무 비싸 당시엔 들여오지 못했다.

어쨌든 제1차 은하내전을 다룬 스타워즈는 모든 틀과 경계를 산산조각내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로 내 사고를 확장시켰다. 검은 바탕에 진한 노란 글씨로 비스듬히 날아가는 오프닝 크롤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스카이워커 사가(saga)는 오히려 지구와 전혀 관련이 없어 더 좋았다. 그때 '세상에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감격에 겨워 말도 내뱉지 못하며 극장을 나오던 내게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여태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미없었다며 불쾌해했다는 게 충격적이긴 했지만.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은 1944년 미국 캘리포니아 머데스토에서 태어났다. 카레이서가 되고 싶어 했으나 교통사고를 당해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남가주대학) 영화학과에 들어갔다. B급 SF드라마에 빠져있던 소싯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후에 '죠스'로 세계 최초 블록버스터 장르를 개척할 스티븐 스필버그와 '대부' '지옥의 묵시록'으로 일세를 풍미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가장 친한 대학 동기들이다. 그들은 현재도 절친으로 코폴라보단 연배가 비슷한 스필버그와 좀 더 막역하게 지낸다고 한다.

루카스는 놀랍게도 대학시절 그 천재들 사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단편 영화 '전자미궁, THX1138 4EB'를 만들어 호평과 많은 상을 받고 워너 브라더스사로부터 장학금까지 받았던 것이다. 졸업 후 코폴라와 영화사 아메리칸 조에트로프를 설립하고, THX1138을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하지만 회사를 거의 말아먹을 만큼 흥행에 처절하게 실패하고 만다. 그 후 회사를 나와 1973년 77만달러라는 저예산으로 만든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가 대흥행해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기사회생한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1971년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제작사 루카스 필름을 차린다. 그는 자신이 늘 꿈꿔온 스페이스 오페라(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과 전쟁을 주요 소재로 삼은 SF 소설, 일종의 무협지풍 우주 활극) 스타워즈를 만들 결심을 한다. 1966년부터 TV에선 '스타트렉'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고 루카스는 스타워즈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쏟아부어 특수효과 팀인 ILM을 만든다. 하지만 제작과정은 순탄하지 않아 맡고 있던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작업도 모두 중단한 채 스타워즈 각본을 수없이 뜯어고치기만 했다.

그 표류 중에 조지프 캠벨의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감을 받아 신화나 고전 설화, 혹은 역사적 사실을 다룬 그의 저서를 모두 읽은 뒤 초점을 잡아 상당한 수준의 각본을 완성했다. 구라사와 아키라에 경도된 자포네스크란 점도 유명하다. 하지만 시놉시스를 본 모든 영화사들은 퇴짜를 놓았고 유일하게 20세기 폭스사에서 쥐꼬리만 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스타워즈는 상상 이상으로 제작비가 들어갔고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루카스는 그 스트레스로 실어증까지 걸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내부 시사회에서도 스필버그 외엔 누구도 성공을 예상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 공전의 대히트였다.

영화의 대성공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20세기 폭스사 이사진은 감독 봉급을 깎는 대신 스타워즈 관련 상품의 판권을 루카스에게 단돈 2만달러에 팔았고, 그는 이를 프랜차이즈화하여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이는 영화산업의 전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프로듀서로 오리지널 시리즈 후속편에 참여한 루카스는 작가들을 고용해서 스타워즈 세계관이 소설과 만화책 등 다양한 매체로 계속 이어지게 했다. 말 그대로 그는 스타워즈 창작자이며 창조자가 되었다.

1981년 루카스는 또 다른 대작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의 아이디어와 스토리로 각본을 쓰고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았다.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그가 프로듀싱한 이 모험영화 또한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뒀다. 특히 시리즈의 1편인 '레이더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관왕을 차지해 어드벤처물의 바이블이자 교과서로 쓰이는 걸작이다. '마궁의 사원' '최후의 성전'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이어 최근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 '운명의 다이얼'이 개봉될 예정이라고도 한다.

1990년대 프리퀄 트릴로지(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 에피소드2-클론의 습격,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를 오리지널 시리즈처럼 자신이 프로듀싱하고 감독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했지만 '스타워즈는 조지 루카스가 다뤄야 한다'며 모두 거절해 전부 감독하게 됐다. 다스 베이더의 탄생을 셰익스피어리언 비극, 즉 주인공의 어떠한 결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국 자신과 주변인의 파멸로 이어지는 서사로 풀어놓는 시리즈인데 평가는 좀 갈리는 편이다. '스타워즈를 만든 위대한 자'이자 '스타워즈를 망치는 원흉'으로 애증이 교차된 팬덤이 생성되어 있다.

사실 루카스는 영화 제작자로서의 능력은 탁월한데 감독, 각본가로서의 능력에는 회의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최고경영자, 영화 기획자, 특수효과와 음향 기술자로서의 능력과 첨단기술에 대한 선구안으로 ILM, THX는 세계 최고의 CG, 음향 회사로, 1982년 설립한 루카스 아츠는 당시 블루 오션이었던 게임 산업으로, 90년대엔 디지털 상영관 같은 홈 시어터 다운로드 아이디어를 최초로 현실화한 사람으로 즉 아날로그 영화산업을 디지털로 넘긴 천재라는 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2012년 10월, 루카스는 월트 디즈니사에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등의 판권을 40억5천만달러(약 4조4천150억원)로 매각한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길 원치 않고, 고령이 된 자신이 당시 기획하던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에피소드7-깨어난 포스, 에피소드8-라스트 제다이, 에피소드9-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프로젝트를 버거워해서였다. 컨설턴트 자격으로 루카스 필름의 경영에 대한 컨설팅을 맡기로 디즈니사와 약속했지만 사실상 배제당해 '백인 노예상에게 스타워즈를 팔아버린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시퀄 시리즈는 저주에 가까운 혹평을 받았다.

루카스 감독의 40여 년에 걸친 스타워즈 대장정은 이제 베오울프, 아서 왕 전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현대 미국의 신화가 되었다. 스카이워커, 포스, 제다이, 광선검, 내가 네 아버지다(I Am Your Father), 포스가 함께 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는 우리의 이순신, 거북선, '나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처럼 이제 미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역사가 된 것이다. 이것이 조지 루카스의 위대함이다. 앞으로의 행보에도 포스가 함께하기를. 오래된 관객의 바람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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