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포항 기계면 봉계리 치동마을 분옥정…층층 벼랑계곡 옥구슬 구르는 듯한 물소리 '유유자적한 삶'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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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6 08:19  |  수정 2023-05-26 08:22  |  발행일 2023-05-26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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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평저수지. 봉양정 바로 왼쪽이 수령 300년이 넘은 버드나무, 저수지 너머 오른편의 주황색 건물은 옛날 마을창고였던 마을회관이다.

물이 가득 찰랑대는 말미들을 가로질러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안길삼거리에서 가로로 긴 건물 위에 커다랗게 올라선 '봉좌마을'이라는 이름을 읽는다. 봉좌마을은 기계면 봉계리와 문성리, 고지리 사람들이 함께 설립한 공동체 마을의 이름이다. 마을 뒷산이 봉좌산(鳳座山)이라 그리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폐교된 초등학교로 체험센터로 쓰이고 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다. 봉계1리 마을회관과 작은 저수지를 지나 큼직한 사주문과 대단히 멋지게 가지를 펼친 소나무 앞에서 멈춘다. 어딘가 깊은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온갖 새들의 소리가 창공을 가로지른다.

분옥정

입구 들어서면 쇠처럼 단단한 400년 '만지송'
계곡 쪽 놓인 세 칸 정자마루와 두 칸의 온돌방
당파 휩쓸려 벼슬 포기한 김계영, 詩 쓰며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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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옥정 입구의 수령 400년 된 소나무. 인조 14년인 1636년 경주김씨 일암 김언헌이 이곳에 들어와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은 잠겨 있으나 그 곁의 담이 들고 나기 좋게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판석이 징검다리처럼 놓인 길이 협문으로 향한다. 왼쪽으로는 낮은 석축 위로 잔디마당이 넓고 근래에 세운 듯한 4칸의 추모정이 자리하는데 고택 음악회가 종종 열리는 곳이라 한다. 오른쪽은 슬쩍 기울어진 땅으로 몇 그루의 나무와 시비가 있고 그 뒤로 좁고 깊은 계곡이 떨어진다. 몇 그루의 나무 중 그 첫 번째가 소나무다. 수령이 400년 정도라는 이 나무는 가지가 너무나 많고 왕성해 만지송(萬枝松)이라고 불린다. 약 360년쯤 전인 인조 14년인 1636년에 경주김씨 일암(逸庵) 김언헌(金彦憲)이 이곳에 들어와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소나무는 쇠처럼 단단하고 건강하다.

협문은 잠겨 있다. 잔디마당으로 올라서니 내부가 훤히 보인다. 세 칸의 정자 마루가 계곡 쪽에 놓여 있고 가운데 칸 뒤로 두 칸의 온돌방을 낸 정(丁)자형 건물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일곽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분옥정(噴玉亭)이다. 마당에서 물소리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간다. 골짜기는 깊으나 심장을 옥죄일 만큼 폐쇄적이지 않고, 계류의 양은 소소하나 마음이 환해질 만큼 맑은 소리를 낸다. '분옥'은 '바위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마치 옥구슬을 뿜어내는 것 같다'는 뜻이다. 분옥정은 조선 숙종 때의 유학자 일암의 증손인 돈옹(遯翁) 김계영(金啓榮)을 기리기 위해 후손 김종한이 순조 20년인 1820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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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의 푸르스름한 너럭바위에서 분옥정을 올려다본다. 정자는 서향이고 계곡의 벼랑을 면벽하고 있다. 마루의 뒷면은 판벽으로 막혀 있고 측면은 판문으로 닫혀 있다.

"새는 그윽한 곳에 구름과 함께 자고/ 맑은 시냇물은 달과 같이 흐르네./ 홀로 이 밤이 길어 어정거리니/ 누가 나의 깊은 마음을 알리요." 김계영의 시다. 그는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세상이 당파와 매관매직으로 혼탁해지자 벼슬을 포기하고 이곳에 눌러앉아 시를 쓰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마루에 용계정사(龍溪精舍)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러니 계곡은 용계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편액들이 걸려 있다. 기문이거나 시판일 것이다. 분옥정은 화수정(花樹亭), 돈옹정, 청류헌(聽流軒) 등으로 불린다. 편액이 걸려 있다고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분옥정과 청류정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 하고 용계정사와 화수정 현판은 추사의 아버지인 유당(酉當) 김노경(金魯敬)이 썼다고 한다. 추사의 글씨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문은 추사의 6촌 형이며 당시 우의정이었던 김도희(金道喜)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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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정과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2015년 11월13일 두 그루 모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물가의 푸르스름한 너럭바위에서 분옥정을 올려다본다. 정자는 서향이고 계곡의 벼랑을 면벽하고 있다. 마루의 뒷면은 판벽으로 막혀 있고 측면은 판문으로 닫혀 있다. 마루로 오를 수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약간의 계류만 보일 것 같다. 김계영은 편액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곳에 그의 작은 거처가 있었을 성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도 이 좁은 계곡에는 물이 흘렀을 것이고 새소리는 많았을 것이다. 지구가 만들어 놓은 층층의 벼랑과 그 사이에서 자라난 풀과 나무들을 마주하고 밤이면 잠드는 새소리와 더욱 커지는 물소리에 마음 어정대는 그런 삶이었을 듯싶다.

치동마을 말미평저수지

저수지 가 300년 넘은 버드나무 웅장한 자태
물속 기둥 내린 봉양정, 도올 김용옥이 쓴 현판

용계의 물을 가두어 만든 것이 마을 저수지다. 저수지를 뱅그르르 둘러 산책로가 놓여 있고 물가 오디나무에 열매가 까맣게 익어 간다.

입향조인 일암은 27세 되던 해 늦가을에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울창한 산림을 직접 벌채하고 터전을 잡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벌치동(伐致洞)이라 했다가 후에 '벌' 자의 어감이 거칠다 하여 '치동'이라 불렀다. 그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났으니 어떤 예감이 있었던 걸까, 이런 골짜기에 미리 터를 마련했으니. 이후 300여 년 전 즈음 한 나그네가 지나가다 마을의 형상이 불이 자주 나는 지형이라고 말해주었단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이 저수지다. 처음에는 대촌지(大村池)라고 했다가 이후 이 저수지의 물로 마을 앞 말미들을 적시게 되면서 말미평지(馬未平池)가 되었다. 저수지 가에 300년이 넘은 버드나무 2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서 있다. 그 곁의 버드나무도 수령이 만만찮아 보인다. 호란과 그 이후 마을의 긴 시간을 곳곳에서 건강히 살아있는 고목들이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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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석이 징검다리처럼 놓인 길이 분옥정 협문으로 향한다. 왼쪽은 낮은 석축 위로 넓은 잔디마당과 추모정이 자리하고, 오른쪽은 슬쩍 기울어진 용계계곡으로 떨어진다.

물속에 기둥을 내린 팔각정자가 있다. 봉황(鳳)과 버드나무(楊)에서 따온 봉양정(鳳楊停)이다. 현판의 낙관을 살펴보니 도올 김용옥이다.

가운데 난간의 계자다리 속으로 멀리 분옥정의 지붕과 소나무가 보인다. 저수지 옆 주황색 건물은 마을회관이다. 예전에는 마을창고였다. 뜬금없지만 한국 연극사는 1908년에 시작되고, 포항 연극사는 1914년에 시작된다. 이곳 기계청년회에서도 청년회 운영 자금을 만들기 위해 연극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당시 신문에 남아 있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일본의 억압으로 민족 사상을 고취하는 연극은 약화되기 시작했고 1940년대에는 거의 말살된다. 그러다 광복 후에 청년들의 연극 운동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마을창고는 치동 마을 청년들이 희곡을 집필해 연극을 연습하고 공연을 한 곳이다. 연극의 제목은 '태극기를 흔들면서'였다. 마을회관을 지나고 봉양정과 버드나무를 지나 데크길을 따라 간다. 물가의 작은 밭에 엎디어 있던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아이고 모자를 왜 안 쓰요! 얼굴 다 상하것네!" 곧 태풍이 온다는데, 오늘은 조금 뜨겁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포항고속도로 서포항IC로 나간다. 포항, 기계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하다 고지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기계천 건너 기남길 따라 직진한다. 분옥정 이정표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봉좌마을 간판이 있는 옛 폐교를 정면으로 만난다. 그 왼쪽 길로 계속 들어가면 마을회관과 저수지 지나 분옥정이 자리한다. 분옥정 앞에 약간의 주차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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