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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사주에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은 시간이나 비용이 아니라 떠나려는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운명과 의지 덕분에 세계 5대 박물관이라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런던 대영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대만 고궁박물관을 모두 방문하였다.
모든 박물관의 소장품을 볼 때마다 매번 감동과 환희를 느끼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궁박물관에서 만난 삼족(三足) 청동기 솥이다. 책걸상이나 자동차처럼 물건의 받침대는 네 개가 안정적이다. 세 개인 경우 하나라도 부러지면 쓰러지게 된다. 그래서 팽팽하게 긴장하면서도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관계를 '솥 정(鼎)'자를 써서 한자로 정립(鼎立)이라고 한다.
국가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독립한 기관에 권력을 나누어 상호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도록 하자는 것이다. 요즘 말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사법도 법원, 검찰, 변협에 의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나치게 한쪽만 강해져 견제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법조삼륜이라는 말처럼 서로 협조하되, 지나친 유착은 독이 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묘를 잘 살리면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최근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에 대한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의 결정이 연기되었다. 다른 전문가단체에서 모두 대한변호사협회를 부러워하는 것이 소속회원에 대한 자체 등록권과 징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수행하는 업무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변호사에 대한 징계는 원칙적으로 대한변협 산하 변호사징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다만 대한변협의 징계에 불복하는 변호사는 징계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법무부징계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변호사법 제98조 제2항에 의하면 법무부징계위원회는 이의신청을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결정을 하여야 하며,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3개월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다.
한편 행정절차에 관한 공통적인 사항을 규정하는 행정절차법 제19조에 의하면 처분을 연장하는 경우 해당 처분의 처리기간 범위 내에서 한 번만 연장할 수 있다. 법무부는 국가의 법질서 유지와 집행을 총괄하는 행정청으로서 당연히 이를 준수하여야 한다.
로톡 가입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변호사들이 이의신청을 한 날이 2022년 12월8일인데, 이로부터 7개월이 훨씬 경과한 2023년 7월20일 첫 심리기일이 열렸다. 일반 행정심판 사건에 비추어 볼 때 극히 이례적인데 다시 연기된 것이다. 업무의 성격상 철저히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협회장일지라도 대한변협 징계위원회에 관여하거나 그 결정을 번복하지 못한다. 법무부 장관 역시 같은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로톡의 문제는 검찰과 법원, 그리고 헌법재판소까지 거치면서 충분히 쟁점이 정리되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어떤 내용의 결정이 나오느냐 여부를 떠나서 결정의 지연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제27조 제3항은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행정심판 역시 준사법절차로서 그 정신은 일맥상통한다. 제 식구 감싸기, 법조카르텔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나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법조삼륜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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