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4] 주산지와 절골계곡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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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6 07:47  |  수정 2023-09-06 08:30  |  발행일 2023-09-06 제16면
수령 300년 물속 왕버들·새벽녘 물안개…'몽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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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재에서 내려온 물을 가두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주산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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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왕산 별바위골 끝자락에 위치한 주산지는 물속에 왕버들과 능수버들이 자생하고 있어 신비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또한 주산지는 독특한 지질 구조 덕분에 수백 년간 물이 마르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면은 부의 동쪽이라 부동면(府東面)이라 했고, 마을은 배나무밭이 넓어 이전리(梨田里)라 했다. 지금 면은 주왕산에 기대 있어 주왕산면, 마을은 주산지가 있어 주산지리다. 주왕산 별바위골 끝자락에 아름다운 주산지가 있다. 물은 별바위에서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 와 주산지에 머물고, 주산지는 울창한 수림에 안겨 동그마니 하늘을 열고, 물속에 뿌리내린 왕버들은 수액으로 가득 찬 가지를 뻗어 하늘을 어른다. 주산지가 만들어진 것은 300년도 더 전이라는데, 지난 세월 주산지는 마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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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에는 산책로와 함께 주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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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축조를 주도한 이진표의 공적을 기리는 송덕비.

◆주산지

주산지라는 이름은 저수지의 동쪽 주왕산면 내룡리의 고개인 주산재(주산령, 注山嶺) 정상부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가두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주산이라는 이름은 주아산(注兒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 이름은 신증국동국여지승람에 나올 만큼 오래되었는데 주산지 동쪽에 있는 해발 745m의 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 그곳에 별바위가 있다. 별바위 서쪽 아래 해발 400m 즈음의 계곡을 막아 물을 가둔 것이 주산지다. 별바위에 단풍이 들면 용이 승천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주산지는 경종 원년인 1720년 8월에 착공돼 이듬해 10월에 준공됐다. 저수지 축조에는 월성이씨 처사(處士) 이진표(李震杓)의 공이 컸다고 한다. 주산지 입구 바위 위에 이진표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전면에는 '이공제언성공송덕비(李公堤堰成功頌德碑)' 즉 '이 공의 제방축조 성공을 기리는 송덕비'라 새겨져 있고 '1771년 시월에 세우다'라는 건립일이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정성으로 둑을 막아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한 조각 돌을 세운다'라는 시가 더해져 있다. 후면에는 송덕비를 세운 이들의 이름과 착공일과 준공일, 그리고 노역자가 66명이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주산지리 사람들은 매년 양력 4월이 되면 산신과 주산지를 만든 선조에게 감사를 표하고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주산지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책로가 주산지의 절반을 감싼다. 맑게 그늘진 길이다. 주산지 둘레에는 굴참나무, 굴피나무, 망개나무 등이 자란다. 일대의 울창한 숲은 천연기념물 제324호인 솔부엉이, 제327호인 원앙, 제330호인 수달, 고라니, 너구리 등이 살고 있는 야생동물서식지 특별보호구역이다. 주산지에는 팔뚝만 한 잉어와 붕어 등 토종어류가 오래전부터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강태공들이 계절마다 몰려들었다고 한다. 주산지를 처음 축조했을 때 주위는 1천180척으로 약 357.6m, 수심은 8척으로 2.4m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주산지의 규모는 제방 길이가 63m, 높이가 15m이며 못의 동서 길이는 약 200m, 남북으로는 약 100m, 깊이는 평균 7.8m, 최고 10m 정도다. 만수 면적은 2.8㏊이고, 저수량은 10만8천t이나 된다. 1931년에 현재 규모로 증축되었고, 1983년에는 둑 확장 공사를 했다. 2013년에는 노후된 사통(斜桶) 부분을 교체했는데, 사통은 수위 조절을 위해 경사면에 설치한 장치다.


1720년 주산지 착공해 이듬해 완공
300여년간 한번도 물 마른 적 없어
저수지 입구에 이진표 공적비 세워

주왕산 남동쪽 자락 3.5㎞ 절골계곡
가을이면 만산홍엽 탐방객 인산인해



주산지는 지난 300여 년간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른 적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수원을 보유하고 있다. 주산지가 마르지 않는 것은 주왕산의 지질 구조 때문이다. 주왕산의 몸통을 이루는 암석은 화산재가 굳어진 아주 단단한 응회암이다. 이러한 주왕산 응회암층 위 고도 500m 이상에는 퇴적암과 안산암질의 용암이 쌓여 있다. 이는 주왕산의 큰 몸체가 만들어진 후 퇴적의 시간이 있었고 다시 화산이 분출했음을 의미한다. 상부층인 퇴적암과 응회암은 빈 공간이나 틈의 비율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비가 오면 물을 머금은 뒤 조금씩 흘려보낸다. 이것이 주산지의 수원이다. 주산지의 바닥은 주왕산 응회암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물을 가두는 그릇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주산지의 물은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

주산지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1세기에 들어 영화와 광고, 드라마 등에 등장하면서 골짜기의 저수지가 세상에 드러났고, 이후 주산지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물속에 뿌리내린 고목들이다. 주산지에는 능수버들과 왕버들 30여 그루가 물속에 자생하고 있다.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빠르게 성장해 수백 년을 유유히 살아왔다. 1983년과 2013년의 공사 때 주산지의 물을 모두 뺐지만 왕버들의 생육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수령이 300년 이상 된 왕버들은 신화적이고 물안개가 내려앉는 새벽녘의 풍경은 그저 먹먹하다. 옛날 한여름이면 버들 그늘에 앉아 호수에 발을 담그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 여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버들가지에 앉아 온종일 울어대는 꾀꼬리 소리를 들었다고도 한다. 아름다운 주산지는 2013년 3월2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5호로 지정되었으며 2017년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24개 명소 가운데 하나다.

◆절골계곡

주산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절골 계곡이 있다. 주왕산의 남동쪽 자락이다. 절골은 옛날 계곡 깊은 곳에 운수암이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는 골의 이름도 운수동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문인 권이복은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이 좌우에 병풍처럼 나열되어 저절로 십리돌병풍을 형성하였다. 십 리 길이 끝나는 곳에 평탄한 언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운수암이 위치한 곳이다'라고 했다. 절은 사라지고 그 이름도 오래 잊혔지만 근래에 다시 살아났다. 절골계곡 탐방로는 '구름과 물을 벗 삼아 걷는 길, 운수(雲水)길'이다.

운수길에 들어선 지 몇 걸음 만에 옛사람이 말한 십리돌병풍을 실감한다. 벼랑 높고 골 깊은 협곡이다. 단애들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끝 모르게 이어진다. 고요하고 맑아 절로 깊은 숨을 쉰다. 절골계곡은 주왕산 응회암지대에 형성된 협곡이다. 응회암은 식으면서 수축되어 단단해지고 동시에 수축할 때 발생하는 힘이 수직의 규칙적인 절리를 형성한다. 대기나 물에 시달린 절리의 면이 어느 날 뚝 떨어져 내리면 단호한 단애를 남긴다. 이러한 낙하는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탐방로는 자연스럽게 계곡을 따라 간다. 일부 구간에 목재 데크와 다리가 설치돼 있지만 대개는 개울과 나란히 자갈길을 걷고 때로는 징검다리로 얕은 여울을 건넌다. 절골을 흐르는 물은 주산천(注山川)이다. 주산천은 이리저리 굽으면서 제 몸 닿는 곳마다 흔적을 남긴다. 물길의 가장 깊은 곳을 연결한 선을 '최심하상선'이라 한다. 물은 굽이져 흐르고 최심하상선은 양쪽 기슭에 번갈아 나타난다. 이 선이 인접한 곳은 침식을 받아 깊은 소를 만드는데 절골에는 폭이 3~8m인 소가 20개 정도 있다. 소가 깊어지는 동안 그 맞은편에는 모래나 자갈 등이 초승달 모양으로 쌓이는데 이러한 퇴적지형을 '포인트 바'라고 한다. 우리가 소풍처럼 자박자박 걷는 물가의 자갈길은 대개 이러한 초승달 지형이다.

계곡을 거슬러 오를수록 산세는 순해지고 주변 풍광은 깊이를 더해간다. 아껴 거닐고 싶은 그윽함이다. 절골로 합수되는 또 하나의 물줄기인 신술골 입구를 스쳐 지나면 운수암이 있었다는 너른 터가 나온다. 30년 전만 해도 화전민이 살았다고 하는데 사람이 살던 흔적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계곡이나 기암절벽보다 숲의 기운이 더 짙어지고 머지않아 대문다리에 닿는다. 신술골에서 대문다리까지는 일본잎갈나무, 신갈나무,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가을이면 만산홍엽으로 인산인해가 된다. 탐방지원센터에서 대문다리까지 3.5㎞를 보통 절골계곡이라 한다. 주왕산 절골계곡은 2016년 제 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했고, 또한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명소 중 하나다. 내내 꿈같은 그 길을 떠날 적에는 가만 귀 기울여 볼 일이다. 그러면 등 뒤에 곧추선 계곡이 외친다. '갑시데이~'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청송군. 청송 유네스코지질공원. 한국지명유래집.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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