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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
지난달 영남일보사 최고경영자프로그램 졸업식 행사를 앞두고 'K 여중을 졸업한 나의 제자 곽현지가 맞는지 궁금해서 연락 남긴다'는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필자의 중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이었다. 20년 전 예의 바르고 반듯하고 꿈 많던 소녀가 떠올랐다. 거친 세상 풍파에 꺾이고 또 깎이면서 조삼모사하기도 하며 억척스럽게 지내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이 대조되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꽃다발을 준비할 테니 졸업식 날 보자고 하는 선생님께 '뵐 낯이 없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에게 현지는 여전히 멋진 여성이다. 앞으로도 더욱 멋진 여성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도 살짝 핑 돈다'는 답장이 왔다.
필자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입학식, 졸업식도 참석 못할 정도로 이런저런 일로 항상 바쁘셨다. 그만큼 학교 담임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셨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의 선생님은 예습·복습 잘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셨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돌아가더라도 바른길을 가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아침에 일찍 기상해야 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와 같은 고리타분한 얘기들을 주로 하셨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선생님이 기대하는 모습에 부응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입시를 위한 교과 과목의 지식만 배웠다면 2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선생님의 문자메시지에 만감이 교차하며 지금처럼 눈물이 흐르지 않으리라.
'교사'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스승'은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 가르치는 사람이다. 맞벌이 부모를 둔 자녀나 한부모·조손 가정의 자녀, 왕따와 같은 학교 폭력·가정 폭력을 당하는 자녀를 보듬어주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제자가 자신의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꿈을 꿀 수 있도록 격려해줄 수 있는 스승이다.
고등학교 담임교사로 재직 중인 지인이 최근 직접 겪은 일이다. 지도 학생의 신체에서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어 신고 의무에 따라 신고를 했는데 학부모로부터 찾아오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할까 봐 무서웠지만 폭력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폭력성을 띠는 성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움을 받아야 심신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소신으로 용기를 냈다고 했다.
수능 킬러 문항을 맞추고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사회지도층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 먹고살기가 빠듯한 가혹한 현실이 스승과 제자라는 아름다운 관계도 끊어버리고 우리들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의 칼날이 이 사회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외로운 늑대, 묻지마 살인과 같은 사회 병폐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정교한 법안과 정책, 공권력 외에 가정과 학교에서 학부모와 교사,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녀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제자의 투정에 나의 선생님은 '네가 서울에서 어떤 일을 했던지간에 병원이라는 조직 안에서는 새내기이니 허드렛일만 주어진다 하더라도 묵묵히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따끔하게 충고해 주셨다. 오랜만에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선생님은 아름답고 고우셨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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