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5] 국제슬로시티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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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13 07:42  |  수정 2023-09-13 07:44  |  발행일 2023-09-13 제16면
수려한 자연경관, 살아 숨 쉬는 전통문화…"쉬어가도 괜찮아"
자연이 깨어나는 시간에 함께 깨어난다. 자연이 잠드는 시간에 함께 잠든다. 시간이 특별히 선사한 흙과 돌로 그릇을 빚고, 지구가 각별히 내어놓은 푸른 것들로 음식을 만든다. 솔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잔잔한 윤슬과 힘찬 물여울에 마음을 빼앗기며, 충과 효, 의와 예와 덕과 같은 오래 이어져 온 정신을 소중히 여긴다. 세상의 가치들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와중에도 자연과 전통의 가치는 온전히 남았고 욕망과 소리, 빛, 시간과 분위기는 낯익지만 익숙한 그 무엇과도 같지 않다. 이러한 고장을 세상 사람들은 '슬로시티(Slow City)'라고 부른다. 푸른 소나무의 땅, 청송은 국제 슬로시티다.

산촌형 슬로시티 작년 세번째 인증
송소·송정고택 품은 덕천충효마을
다양한 숙박·체험 프로그램 운영
중평선비마을 솔밭 힐링하기 좋아
솔누리느림보길, 청송 속살 잘 간직

◆국제 슬로시티 청송

국제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시작한 '느린 마을 만들기' 운동이다. 1986년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어 느림과 빠름, 농촌과 도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 지구적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슬로시티의 슬로(Slow)는 단순히 패스트(Fast)의 반대가 아니다. 이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고, 여유와 균형 그리고 조화를 찾아보자는 의미다. 이는 결코 현대 문명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위해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슬로시티는 전통문화와 자연환경, 지역 예술을 지키고자 지역민이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운동이다. 지역 특산물 및 전통음식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속도 경쟁이나 양적 성장보다는 자연의 걸음에 발 맞춰 나가자는 운동이다. 현재 전 세계 33개국 291개 도시가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되어 있으며, 한국도 청송군을 포함한 17개 지방자치단체가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되어 있다.

청송은 2011년 자연이 아름다운 주왕산면과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파천면을 대상으로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2017년에는 슬로시티의 거점지역이 청송군 전역으로 확대되어 재인증을 받았고 2022년 세 번째로 재인증되었다. 푸른 솔의 고장 청송은 지역의 특색을 살린 산촌형 슬로시티다. 경관이 수려한 주왕산과 주산지, 선조의 생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덕천마을과 중평마을, 전통문화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청송백자와 천연 염색, 전통 한지, 옹기까지 다양한 매력이 넘친다. 청송은 2015년과 2021년 모범적인 슬로시티 운동을 추진해온 도시에 수여하는 '슬로시티 어워드'를 수상했다.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명소 또한 산촌형 슬로시티 청송의 가치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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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장군길에서 내려다 본 덕천충효마을 전경. 조선시대 만석꾼이란 호칭도 모자라 '이만석꾼'이라 불렸던 송소 심호택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덕천충효마을

덕천충효마을은 조선시대 만석꾼이란 호칭으로도 모자라 이만석꾼이라 불렸던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의 자손들이 사는 마을이다. 조선 500년 동안 정승이 열셋, 부마가 넷, 왕비 넷을 배출한 청송심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마을은 심씨 자손들이 가꾸는 단정하고 기품 있는 고택으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 송소 심호택이 무려 13년에 걸쳐 지은 송소고택이 자리한다. 한때 방이 아흔아홉 칸이나 됐다는 이 대저택은 오늘날 숙박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연중 3~4회 고택음악회가 열린다. 송소고택 왼쪽에 이웃한 송정고택은 심호택의 차남 집으로 1914년에 지어졌다. 마루에 걸려 있는 오우당(五友堂) 편액은 의친왕의 글씨고, 독립 운동가 철기 이범석 장군이 종종 찾아와 머물렀다고 한다. 송정고택 뒤편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철기 장군이 거닐던 산책로다. 큰 소나무 아래 기대서서 내려다보면 덕천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에는 항일의병장 소류 심성지가 후학을 가르쳤던 소류정과 재실인 경의재, 창실고택, 청송심씨 찰방공 종택 등이 고즈넉이 자리하며 골목과 골목을 연결하는 토석담이 특히 아름답다.

송소고택 옆에는 간단한 음료와 지역 농산물로 만든 국수를 내는 '덕다헌'이 있다. 도자기 작가님이 운영하는 카페 '백일홍'은 최근 마을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핫플레이스다. 마을 입구에는 염색 체험장과 '심부자밥상'이 자리하고 마을의 공동 쉼터인 '공마당'은 문화장터로 이용된다. 다도교육과 한옥체험을 겸하고 있는 '청원당'은 옛날 심씨 문중의 예절과 고사, 덕 등을 가르치던 '세덕사'로 화재 후 방치되었던 것을 새 단장한 곳이다. 덕천마을에는 고택 여섯 곳에서 숙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절 교육이나 염색하기, 도자기 만들기, 떡메치기, 고추장 만들기, 윷놀이와 제기차기, 연날리기, 민화 그리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막 세수를 한 듯 깨끗한 동네를 걷다 보면 느릿느릿 소곤소곤 말 없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것은 오늘에 전해지는 오래된 이야기, 현재를 사는 오래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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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중평선비마을 초입에 이르면 수령 2백년이 훌쩍 넘는 우직한 소나무 80여 그루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평선비마을

용전천 변에 자리한 중평선비마을은 신숭겸의 후손들이 사는 평산신씨 집성촌이다. 조선 전기에는 합강에서 살다가 임란 후 신한태(申漢泰)가 중평리로 이거해 종택을 짓고 집성촌을 이뤘다. 마을에는 평산신씨판사공파종택과 서벽고택, 사남고택 등 오래된 집들이 반듯하게 남아 있고 후세 교육을 위해 지은 서당과 효행이 남달랐던 물촌 신종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선비들이 시회를 열던 서벽정 터, 북극성 또렷한 별자리 바위 등이 곳곳에 자리한다. 중평마을 서쪽 끝자락에 검소하게 자리하고 있는 제실 미산당은 숨은 듯 다리쉼하기 좋은 장소다. 마을 안 용전천을 바라보는 산기슭에는 사양서원이 위치한다. 신숭겸의 12세손인 문정공 신현을 주벽으로, 그의 아들 문훤공 신용희와 고려말 학자 운곡 원천석을 봉안하고 있다. 매년 향사를 봉향하고 수시로 유학 강론이 열린다. 서원 내 사당은 화해사(華海祠)로 편액은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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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선비마을에는 사남고택을 비롯해 평산신씨판사공파종택과 서벽고택 등 오래된 집들이 반듯하게 남아 있다.
중평마을 회관 앞에는 오래된 연자방아가 놓여 있다. 마주하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은 옛날 술이 익어가던 양조장 터다. 그 곁으로 한적한 담장들이 앞서 걸어가는 고샅길은 밤시골 마을길이다. 밤시골 지나서는 솔 향 가득한 연화봉 올레길이 이어진다. 마을 초입에는 잘생긴 소나무가 빼곡한 중평솔밭이 펼쳐진다. 수령 200 년이 훌쩍 넘는 우직한 소나무 80여 그루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솔밭에는 30여 동의 텐트 설치가 가능하고 바로 앞으로 용전천이 흘러 낚시나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솔잎 사이로 햇볕이 반짝거리며 부서지는 한낮도 좋지만, 이른 아침 진한 솔향기를 맡으며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소나무 숲의 흑백 풍광 속을 걷다 보면 번다한 삶이 잠시나마 까마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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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외씨버선길 2길은 '슬로시티길'로 운봉관에서 출발해 찬경루, 전통시장, 덕천마을을 거쳐 신기리 느티나무로 이어진다.
◆솔누리느림보길과 외씨버선길

솔누리느림보길은 주왕산면의 하의리와 상의리, 부일리와 주산지리리 등 주왕산 주변 마을을 연결한 길이다. 전체 7개 구간, 총연장 14.5㎞ 정도 된다. 1구간은 하의교에서 주왕산삼거리까지 2㎞ 코스다. 주방천을 따라 주왕산 기암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2구간은 주왕산삼거리에서 주왕산주차장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3㎞ 코스로 걸출한 거벽인 기암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며 주방천 하류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3구간은 주왕산삼거리에서 나기평저수지로 이어진 1.8㎞ 코스다. 수수한 마을 풍경을 따라 완만한 길을 오르면 산자락 사이에 숨겨진 저수지가 나타난다. 4구간은 나기평저수지에서 부일리 세골로 연결된 3㎞ 코스다. 전체 코스에서 보면 산행에 가까운 구간이지만 아주 쉬운 난이도의 산행길이다. 5구간은 부일리 세골에서 윗세골로 거슬러 오르는 1.5㎞ 구간이다. 야산에 둘러싸인 마을길로 사과밭이 주변 가득하다. 6구간은 윗세골에서 부일리 저수지까지 800m로 사과밭이 꾸준히 이어진다. 7구간은 윗세골에서 상이전 마을로 연결되는 약 2㎞ 코스로 고개를 넘는 산길이다. 고갯마루에 전망대가 있고 내려서면 주산지 앞의 상이전마을이다. 솔누리느림보길은 청송이라는 이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길로 평가된다.

외씨버선길도 청송과 그 일대를 잇는 대표적인 명소다.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 군을 연결하는 외씨버선길은 1길에서 13길까지 나누어져 있으며 이 중 1길부터 3길까지가 청송에 위치해 있다. 1길은 '주왕산달기약수탕길'로 주왕산국립공원의 주왕계곡과 월외계곡에 이르는 18.5㎞의 길이다. 2길은 '슬로시티길'로 청송읍의 운봉관에서 출발해 찬경루, 전통시장, 덕천마을을 거쳐 신기리 느티나무에 이르는 10.5㎞의 길이다. 3길은 '김주영객주길'로 신기리 느티나무에서 수정사를 지나 객주문학관까지 16.6㎞ 이어진다. 청송의 길들에는 추운 날씨와 큰 일교차를 견디느라 늦게 자라는 청송사과와 깊은 땅속에서 솟아나는 달기약수, 기다림의 맛인 장(醬)과 술, 청송의 원시림에서 자라난 것들로 만든 음식들이 있다. 또한 청송백자와 전통옹기, 전통한지와 천연염색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들이 분포해 있고. 전통을 지켜나가는 마을들이 있다. 매일 새로워지는 오래된 자연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이 길들에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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