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우리들의 블루스

  •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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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14 06:51  |  수정 2023-12-12 11:03  |  발행일 2023-11-1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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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나의 출근길 아침 풍경은 단조롭고 한결같다. 병원 바로 옆 약국 사람들은 환자 맞을 준비를 하며 유리 창문을 닦고 병원 정문에서 환자를 맞이하는 안내 선생은 마당 청소에 열심이다. 녹아내릴 듯한 무더위와 매서운 한파에도 주차 반장은 예의 그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를 한다.

필자는 최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인 31병동을 애써 멀찍이 돌아가곤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31병동의 책임자 K 선생을 마주치기 민망해서다. 31병동에는 바이털 사인(Vital Sign·활력징후)이 흔들리는 중환자들이 입원 중이다.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K 선생은 한밤중과 휴일 새벽에도 응급 상황에 꼼꼼하게 대처하며 생명을 구하는데 성심을 다하고 있다. 수시로 발생하는 응급 상황에 힘들어하는 K 선생을 위해 동갑내기 친구이자 동료인 H 선생이 옆 병동인 32병동으로 부서 이동을 자원했다. 그래서 지금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밤낮으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2층에는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입사한 젊은 진료과장도 있고 말기 암 환자, 치명적인 외상을 입은 환자의 수술을 집도하여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명을 살려낸 백전노장 진료과장 선생도 있다. 행정부서에는 70년생 개띠파, 청도파, 칠곡 카풀파도 있는데 모두 똘똘 뭉쳐 의료진 지원에 열심이다.

병원 인근에는 북성로 철물 공구상, 종로, 염매시장, 동성로 거리가 있는데 홍보팀 현장 답사를 위해 주위를 거닐다 20년 전 필자가 중학생 시절 애용했던 미용실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도심 공동화와 슬럼화, 유동인구 및 정주인구 수 감소로 인한 불황의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대구 4성로(동·서·남·북성로)'의 같은 상권에 위치한 직장인으로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든다. "그냥 버텼습니다"의 '그냥'이 그냥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해온 분들이 있었기에 지역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우리 지역에는 글로벌 빅테크 지사나 기업 가치 상승을 통해 지분 인수와 매각(Exit)으로 수익을 내는 사모펀드, '업 오어 아웃(Up or out)' 조직문화로 무장한 헤지펀드(Hedge fund)의 화끈한 한방은 없다. 하지만 거북이 등껍질 갈라지듯 오랜 장송(長松) 같은 기업들,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중견기업들이 있다. 한 사람의 100걸음보다 100명의 일치된 한 걸음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데 이곳 대구에서는 100명의 일치한 한 걸음이 실제로 가능함을 몸으로 체감한다. 단조롭고 한결같은 모습 속에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고지순함, 인고의 세월이 증명해주는 저력이 있다.

비전과 성장에 목마른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 균형 발전, 5대 미래산업 육성, 신공항 건설과 같은 소식이 반갑다. 신규 사업의 순현재가치(NPV), 내부수익률(IRR)을 검토해서 사업 타당성을 관계자들에게 설득하고 삼성그룹 해당 사업 담당자와 미팅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역 발전 정책들이 더 이상 어렴풋한 청사진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와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런 희망이 오늘 아침에도 약국에서, 병원 진료실 주차장과 병동에서, 북성로 공구점과 염매시장, 동성로 상점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우리 공동체의 생명을 살리는 바이털 사인이 되길 기대한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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