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직터뷰] 권도훈 '라일락뜨락1956' 대표 "獨 괴테하우스처럼 이상화생가터도 좋은 문화콘텐츠 될 수 있어"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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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0 08:30  |  수정 2024-01-10 08:30  |  발행일 2024-01-10 제25면
사라질 뻔했던 생가터 빈집, 구청 고증 거쳐 카페로 탄생시켜
대구 위한 문화공간 조성…코로나 땐 의료진에 '커피폭탄'도
"수령 200년 이상화나무에 영감 얻은 한국판 조앤 롤링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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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훈 '라일락뜨락 1956' 대표가 대구 중구 라일락뜨락 1956 내부의 이상화 나무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훈 대표는 "라일락뜨락 1956은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에 이상화 시인을 모티브로 세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청년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심어주고 용기와 정의감 등의 상화정신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이상화 시인(1901~1943)은 1926년 '개벽'(開闢)지 6월호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시를 발표했다. 25세 때였다. 시에는 나라를 잃어버린 청년 시인의 비애와 저항의식, 민족애가 절절히 녹아 있다. 일제에 핍박받는 민초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가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시만 쓴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19년 대구3·8만세운동 때 백기만과 함께 학생 동원에 앞장섰다. 자택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기도 했다. 시와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시기에 그는 지금의 대구 중구 서문로 2가 11에서 거주했다. 그의 생가인 이곳에서 32세까지 살았다. 이후 여러 번 이사를 다니다가 1939년부터 4년간 중구 계산동 주택에서 살다가 운명했다. 대구에는 이상화가 태어난 생가와 죽음을 맞은 고택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상화 고택은 대구 근대골목 투어의 필수코스가 됐을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 하지만 이상화가 떠난 후 생가는 1956년에 허물허졌다. 그 집터에는 새집들이 들어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이상화 생가는 다행히 일부나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생가터에 지어져 방치되던 빈집이 2018년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라일락뜨락1956)으로 재탄생했다. 그곳 마당엔 청년 이상화에게 시심(詩心)을 심어준 수령 200년의 라일락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상화 생가터에서 '라일락뜨락1956'을 운영 중인 문화기획자 권도훈 대표를 만났다.

◆이상화 생가와의 운명적 만남

권 대표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대학원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다. 대구디자인전람회 금상을 비롯해 30여 개의 크고 작은 상을 받은 실력파다. 광고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주>평화산업의 발렌키 브랜드 리뉴얼, 달서문화재단 CI 등도 개발했다. 영남이공대 겸임교수로 12년 동안 학생들에게 실무디자인을 가르쳤다. 디자인이 필요한 곳에 무료로 디자인 실무를 가르친 공로로 2008년 경북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그가 광고디자이너로서 한창 잘나가던 때에 큰 시련이 닥쳤다. 그건 어쩌면 이상화 시인과의 만남을 위한 운명이었다. "2016년에 광고회사를 동업하던 선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때 회사를 정리하고 강의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막냇동생을 몹쓸 병으로 보냈습니다. 슬픔과 공허함이 너무 커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더군요. 2년 동안 사무실에서 식물을 키우고 책만 읽었습니다. 고통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로운 삶의 공간을 물색하던 중 이곳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권 대표는 6년 전 매입한 빈집이 이상화 시인의 생가터 중 안채 위치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 자료들을 모아 대구시청에 생가에 대한 사실을 바로잡아달라는 청원을 했다. 그로 인해 중구청에서 고증을 거쳐 2019년에 이상화 생가터를 알리는 지주식 푯말을 세웠다. "하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아직도 이상화 고택을 생가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상화 시인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게 디자이너인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업 일 년 만에 닥친 코로나…위기를 기회로

권 대표가 부푼 희망을 안고 이상화 생가터에 안착했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곳을 오픈 한 지 일 년 만에 코로나19가 닥쳤습니다. 당시 대구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다시피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동산병원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병원 근처 카페가 모두 문을 닫아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커피를 못 마신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더치커피를 내려 동산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지만, SNS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성금을 보내주더군요. 덕분에 10회에 걸쳐 100잔씩, 총 1천잔의 '커피폭탄'을 쏠 수 있었습니다. 또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8회에 걸쳐 무관객 콘서트를 열어 SNS를 통해 대구경북민에게 '힘든 상황을 극복하자'는 응원 영상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함께한 봉사활동으로 대구시장 표창을 받았고 2020년에는 <사>여성과 도시·영남일보로부터 제1회 미터(美터)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대구 문화예술 명소 라일락뜨락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견뎌낸 권 대표는 '라일락뜨락1956'을 대구의 문화예술 명소로 만들고 있다. 그곳에선 주민과 함께하는 노래자랑과 음악회, 연주회, 시 낭송회, 전시회 등이 열린다. 그의 열정과 다재다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매일 새로운 일을 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바리스타로서 커피를 볶고 내리며, 시각디자이너로서 브랜드 개발 작업도 쉼 없이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이상화 시인을 주제로 한 곡의 노랫말과 뮤지컬 극본을 썼습니다. 북성로를 주제로 한 노래 5곡과 달성군 명소 4곳에 대한 노랫말을 쓰는 등 작사가로도 데뷔(?)했습니다. 음악인들과 협업해 여기서 '북성로 노래자랑'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열린 공간인 만큼 지역 예술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알리고 주민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많은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길 바랍니다. 특히 이상화 시인의 시와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알리고 싶습니다. 매년 이상화 시인이 작고한 4월25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추념식을 여는 것도 그런 소망에서입니다."

권 대표는 지역 청년이 꿈을 펼치는 일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3년 연속 대구시 '청년응원카페'로 선정됐습니다. 2022년에는 제가 주최해 '청년응원 한마당, 멍석을 깔다'를 열었습니다. 여러 분야의 예술지망생을 추천 받아 지역 기업의 후원으로 장학금을 지급했던 게 뿌듯합니다."

◆"대구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의 고장"

권 대표는 이상화의 민족 정신뿐만 아니라 대구의 근현대 문화예술, 대구 정체성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2020년 가을부터 6개월 동안 대구가톨릭 평화방송에서 '문화예술 라일락뜨락'이란 코너를 통해 대구의 문화예술을 알렸습니다. 지금은 TBN 대구교통방송 '대구야사'(격주 목요일 오전)라는 생방송 코너를 통해 대구의 숨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부터 방송해 오면서 저도 대구의 정체성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대구는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로 스스로 규정하고 가두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대구는 정의감과 저항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국채보상운동, 3·8만세운동, 2·28민주운동 등 대구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퍼져나간 역사적인 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구의 정체성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의 고장'입니다."

◆이상화를 K문화 콘텐츠로

권 대표는 이상화와 그의 생가를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화 시인은 대구를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족 저항 시인입니다. 그의 생가터 역시 대구 근대역사의 중요한 장소이자 훌륭한 문화 콘텐츠입니다. 우리나라 K팝, K컬처는 전 세계 문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콘텐츠의 힘'입니다. 독일에는 괴테하우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생가가 최고의 문화 관광지가 되고 있습니다. 조앤 K 롤링은 스코틀랜드 '엘리펀트하우스'란 카페에서 에든버러성을 바라보고 얻은 영감으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썼습니다. 이상화 생가터 '라일락뜨락1956'에서도 한국판 조앤 K 롤링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권 대표는 이상화 생가터를 전국에 알리고 관광명소로 만들려면 해결돼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했다. "이곳 마당에는 이상화가 보고 자랐을 수령 200살의 라일락 나무가 있습니다. 3년 전 광복회 대구지부와 함께 이상화 나무 2세목을 배양해 전국의 학교로 보내 '상화 정신'을 알리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배양 실패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사업을 관청에서라도 재추진해주면 좋겠습니다. 또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2년 전 대구대표 인물 4명(이상화·이인성·이병철·박태준)을 선정해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 사이에선 이상화 생가터를 못 찾겠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구청 차원의 생가 체험 프로그램 및 홍보물 안내가 안 돼 있기 때문입니다. '라일락뜨락1956'은 민간 주도형 역사·문화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 창업 모델입니다. 청년들의 지역 이탈을 막고, 청년 창업을 이끄는 성공 모델을 확산하려면 지자체의 관심과 적극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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