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망자의 마을…고달픈 현실일지라도 단단하게 나아가는 용기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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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2 07:59  |  수정 2024-01-12 07:59  |  발행일 2024-01-12 제17면
눅진한 삶의 고단함과 당당히 마주
남의 시선에 굴종하지 않는 자부심
'견디는 삶' 강요하는 시대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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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의 마을'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열심히 살수록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고단해지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단단한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나아간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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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지음/걷는사람/300쪽/1만7천원

소설가 이정임의 두 번째 소설집. 2016년 발간한 작가의 첫 작품집은 "동 세대의 삶의 씨방으로 삼고, 탄력 있고 쫄깃한 문장의 힘을 과육으로 삼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저자는 이번 소설집에서 존재하고 있으나 마치 무명(無名)처럼 살아가는 존재에 주목했다. 책에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견디는 삶'을 강요하는 이 시대를 향해 강한 한 방을 날린다.

이번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에는 '오르내리' '도망자의 마을' '점점 작아지는' '뽑기의 달인' '벽, 난로' '비로소, 사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등 7개 소설을 엮었다.

책에는 열심히 살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고단해지는 현실 속을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웃이면서, 바로 나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백수가 되어 가난한 산동네에 살면서 치매 걸린 엄마의 요양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나.('오르내리') 사기를 당한 아버지로 인해 버는 돈을 모두 빚을 갚는 데 쏟아붓는 수현.('도망자의 마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각종 지병을 앓고 있지만, 직장에서 병가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점점, 작아지는')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프리랜서 수안.('뽑기의 달인'), 서로에게 안정감을 느끼며 함께하는 무직 비혼주의자 고무와 호양.('벽, 난로') 치매에 걸린 엄마가 나날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이선.('비로소, 사람')

이들의 삶은 희망적이지 않고, 눅진한 삶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들은 세상이 짜놓은 틀이나 남의 시선에 굴종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자부심을 가진 인물들이다. 이들은 제각각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며, 자기 안의 진정한 사람다움을 신뢰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보여준다.

해설을 쓴 장예원 평론가의 말처럼 작가의 소설에선 "모두가 '달려라 하니'의 하니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아도, 달리기 순위 안에 들지 않아도, 서로가 곁을 내주는 '작은' 벗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잠시나마 '고독한 자아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그들이 세상의 기준에선 있으면서도 없는 구름 같은 존재들일지라도.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 답답하기에 다소 지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고달픈 장면을 마주한다. 이로 인해 고통을 받지만, 그렇다고 비관에 빠지진 않는다. 작가는 고달픈 등장인물들의 삶 속에서 명랑성을 끌어내 보인다.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은 이별의 세계에 지어졌다. 오직, 도망가기 위해 지어진 이 마을은 사람이 있지만 산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살아 보려고 젖은 발로도 앞을 향해 걷는 사람이 머무는 마을. 이미 무너졌으니 앞으로 무너질 일은 없는 마을이라 안심되는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이 마을에 없는 것을 자꾸 상상한다. 이정임은 작가의 말을 통해 "아무도 이별하지 않은 것처럼, 누구도 망가지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치며. 그렇게 거짓말로 도망 다녔다. 쓸쓸하지만 꽤 명랑한 마을이라 자부한다"고 했다.

부산 출신인 소설가 이정임은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옷들이 꾸는 꿈'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손잡고 허밍', 산문집 '산타가 쉬는 집'을 냈고,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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