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민족시인 이상화 독립유공자 공훈록 오류 투성이…이육사 '기자 시절' 쓴 기사 첫 발굴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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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14 20:00  |  수정 2024-08-14 19:30  |  발행일 2024-08-15
이상화 시인 '거사 당일 시위군중에 독립선언문 배포' 표기
실제는 일경의 예비검속으로 서울로 피신해 사실과 달라
1930년 7월 17일자 중외일보 석간 팔공산 수해 기사
'대구지국 이활 발전' 적혀 있어 이육사 기명기사로 밝혀져
[단독] 민족시인 이상화 독립유공자 공훈록 오류 투성이…이육사 기자 시절 쓴 기사 첫 발굴
[단독] 민족시인 이상화 독립유공자 공훈록 오류 투성이…이육사 기자 시절 쓴 기사 첫 발굴
국가보훈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상화 시인의 독립유공자 공훈록. 대구 3·8만세운동 당시 이상화 시인의 행적 등이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국가보훈부 홈페이지 캡쳐>
[단독] 민족시인 이상화 독립유공자 공훈록 오류 투성이…이육사 기자 시절 쓴 기사 첫 발굴
민족시인 이상화.영남일보 DB
민족시인 이상화의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내용이 오류가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바른 독립운동사 정립을 위해 정부에서 관리하는 공훈록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실린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에서 주로 활동한 또 다른 항일민족시인 이육사가 중외일보 대구지국 기자 시절 쓴 기사가 처음으로 발굴돼 관심을 모은다. 그동안 이육사가 1930년대 초 대구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한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그가 직접 쓴 기사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단독] 민족시인 이상화 독립유공자 공훈록 오류 투성이…이육사 기자 시절 쓴 기사 첫 발굴
민족시인 이육사. 영남일보 DB
14일 국가보훈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공훈록에는 이상화 시인에 대해 '3월 8일의 서문외 장날의 독립만세 운동 때는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 학생들과의 연락책으로 활약하면서 연합시위를 전개하여, 여기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군중에게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표기돼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상화 시인은 기획 단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맞지만, 일제 경찰의 예비검속을 당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서울로 피신해 거사 당일 '연락책으로 활약하면서 연합시위를 전개해 1천여명의 시위군중에게 독립선언문을 배포'하지는 않았다.

또 공훈록에는 '1922년에는 『백조(白潮)』지 창간호에 「나의 침실로」를 발표하였다'고 적혀있다. 이 역시 잘못 표기된 내용이다. '나의 침실로'는 1922년 1월 백조 창간호가 아니라 1923년 9월 백조 제 3호(종간호)에 발표됐다.

[단독] 민족시인 이상화 독립유공자 공훈록 오류 투성이…이육사 기자 시절 쓴 기사 첫 발굴
1930년 7월 17일자 중외일보 석간. '축일발로(逐日發露)되는 참해비극(慘害悲劇) 사망불명인원육십명(死亡不明人員六十名)' 기사 부제목에 '대구지국 이활 발전(大邱支局 李活 發電)'이라는 부기가 적혀 있어 이육사가 직접 쓴 기사로 밝혀졌다.출처=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한편, 홍석표 이화여대 교수는 '이육사의 중외일보 기자 시기 언론 활동과 고향 상실의 문학적 모티브'라는 논문에서 "1930년 7월 17일자 중외일보 석간에 게재된 '축일발로(逐日發露)되는 참해비극(慘害悲劇) 사망불명인원육십명(死亡不明人員六十名)' 기사는 팔공산 일대에 발생한 초유의 수해 참상을 보도한 것으로, 이육사가 현장 취재 후 작성한 기사"라고 밝혔다.

특히 홍 교수는 "부제목에 '대구지국 이활 발전(大邱支局 李活 發電)'이라는 부기(附記)가 적혀있다. 여기서 '이활'은 이육사의 또 다른 본명으로, 그가 최초로 발표(조선일보 1930년 1월3일자)한 시 '말'에서 쓴 이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석간 보도에 앞서 같은 날인 1930년 7월 17일자 중외일보 조간에 게재된 '대구발 속보 참(慘)! 복사(覆砂)에 루루매몰(累累埋沒)된 부란시우육십개발굴(腐爛屍又六十個發堀)'라는 제목의 기사도 이육사의 기사로 추정된다.

홍 교수는 "기자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같은 장소의 수해 현장을 다룬 점과 석간에서 사용된 어휘가 반복 사용된 점을 볼 때 이육사의 기사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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