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실을 바늘허리에 매서야…

  • 마창훈
  • |
  • 입력 2024-08-29  |  수정 2024-08-29 07:09  |  발행일 2024-08-29 제22면

[취재수첩] 실을 바늘허리에 매서야…
마창훈기자〈경북본사〉

매사에 순서(절차)가 있음을 빗댄 속담 중에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 쓰지는 못한다'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실을 바늘귀에 꿰지 않고, 허리에 맨 체하는 바느질은 헛수고라는 정도의 뜻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면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고, 그 순리를 거스른다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참담할 뿐'이라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있다.

최근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유력 인사들이 지역사회에 던져놓은 의제 중 하나인 '대구시와 경북도를 다시 하나로 뭉치자'는 취지의 행정구역 통합 논의를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게 이 속담이 가슴에 와닿는 것은 왜일까. 몇 주 전 대구시 발(發) A 언론사가 대서특필한 '행정구역 통합'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면, 이 의제는 우리 사회가 선택한 민주주의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 가치인 절차적 당위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절차적 당위성이 필요한 것은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주장이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 전체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최소한 이해나 양해를 구하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충분한 토론이나 홍보 등의 과정은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얼마나 동의하는지, 또 어떤 이유로 반대하는지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또 발생 가능한 제도적 결함 등을 사전에 보완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이점도 있는 만큼, '절차'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 중 하나로 모자람이 없다. 그렇기에 그동안 진행된 일련의 과정들을 되짚어보면, 한마디로 고구마를 먹고 물을 마시지 않은 것처럼 답답한 심정이다.

물론 이를 핑계로 최근까지 제기된 대구·경북 통합 논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거나 뭉개버리기 위해, 맹목적인 비방이나 비난 등의 수단을 동원하는 비민주적 방식으로 뭉개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따르는 만큼, 설사 이들이 주장하는 논거 자체가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의 지향점에 반하는 논쟁거리를 양산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를 수용하고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성숙한 민주주의로 향하는 지름길임은 물론,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공론화의 장에 올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밀실에서 비공개로 논의한 뒤 결과만 발표하는 행태는 더더욱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공론화 과정 등의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안을 언론에 흘려 대서특필하도록 방치하는 등 사실을 호도하는 행태 역시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신에 반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창훈기자〈경북본사〉

기자 이미지

마창훈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