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공연장에서 애국선열의 영혼을 기리는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2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공연장. 엄숙한 분위기 속에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기리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고초를 나타낸 부분에서 일부 관람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도는 모습도 보였다. 김지훈(38·수성구)씨는 "대구형무소에서 저렇게 많은 선조들이 고통받고, 목숨을 잃었는지 알지 못했다. 순국 선열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약 100년 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대구 중구 일원에서 마련됐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는 2일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 순국 독립운동가 216위 추모식'을 진행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던 대구형무소는 1908년 설립돼 1910년부터 대구 중구 삼덕동 일원으로 이전했다. 처음에는 3천800평 규모였지만, 수차례 증축으로 7천800평까지 확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1961년 대구교도소로 이름을 바꾸고, 1971년 달성군 화원으로 이전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구형무소를 거쳐갔다. 경북 안동 출신인 저항시인 이육사는 대구형무소에서 받은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로 삼았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가담한 죄목으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약 3년간 옥고를 치렀다.
대구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박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했으며, 비밀결사단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설립했다. 1918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밖에도 심산 김창숙 선생, 전수용 의병장, 안규홍 의병장 등 많은 독립지사가 대구형무소를 거쳐갔다.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지사는 216명에 이른다. 이중 212명이 국가 서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행사는 김능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의 추모사에 이어 박지극 시인의 추모시 낭송, 샌드아트, 현대무용 등 다양한 추모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다 함께 아리랑을 제창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사업회 상임대표는 "올해로 조국이 광복된 지 벌써 80년이 지났다. 통한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대구형무소를 더 이상 묻어둘 수는 없다"며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순국 선열을 위로하고 후세에 독립운동희생정신을 교육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갖춘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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