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산불은 한순간”…15년째 들녘 달리는 산불 지킴이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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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01 16:36  |  수정 2025-04-01 23:13  |  발행일 2025-04-01
125cc 오토바이에 깃발 달고…화원·논공까지 매일 순찰
2월부터 5월까지 매일 두 시간, 들판 울리는 경고음
[현장속으로] “산불은 한순간”…15년째 들녘 달리는 산불 지킴이

대구 달성군 옥포읍 본리4리 이성규 새마을회장이 직접 제작한 산불 예방 방송용 오토바이에 올라 지역 순찰을 준비하고 있다. 강승규 기자

1일 오전 10시, 대구 달성군 옥포읍 일대. 따스한 봄볕이 스미는 들녘 사이로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우우웅~"

길쭉하게 뻗어있는 논두렁길을 따라 125cc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온다. 파란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탔다. 몸을 바짝 낮춘 채 핸들을 잡고 있다. 이성규(63) 옥포읍 본리4리 새마을회장이다.

오토바이 뒤편엔 낡았지만 묵직한 음향 장비가 실려 있다. 직접 조립해 장착한 고출력 엠프다. 이 장비는 산불 예방 활동에 쓰인다.

스피커에선 산불 예방 안내방송이 쉼없이 흘러나온다. “밭두렁 태우지 마세요! 산불은 한순간입니다!" 굵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논밭과 골목길을 타고 울려퍼졌다. 곳곳에서 창문이 열리고, 밭일을 하던 주민들이 고개를 들었다.지나던 차량은 속도를 늦추고, 누군가는 차창 너머로 손을 들고 인사했다.

이 회장은 해마다 산불 조심 기간인 2월부터 5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마을을 순회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자발적 행동이다. 하루 두 시간, 옥포읍은 물론 화원읍, 논공읍까지 그의 '담당구역'이다. 별도 비용도 받지 않는 자발적 봉사활동이다. “15년 전이었죠. TV에선 산불을 조심하라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여전히 밭두렁에 불을 놓아서 산으로 번지는 일이 반복됐어요."

그는 기술자 출신이다. 전자기기 조작에 능숙했고, 자비로 장비를 사서 오토바이에 부착했다. 처음엔 다소 방송이 허술했다. 하지만 해마다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출력도 높였다.

“소방서에서 나온 건가" 라고 느낄 정도로 제법 음량이 커졌다. 그는 “방송을 틀면 산불 초소에서 감시원들이 뛰어나옵니다. 놀라서요. 실제 뭔가 긴박한 상황이 벌어진 줄 알고요."

이 회장은 싱긋이 미소를 지었지만, 방송은 단순 경고가 아니다. 실제 그가 방송을 시작한 이래, 지난 2월까지 산불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직접 불을 끄기도 한다. “무언가 감이 오면 멈춰요. 누가 밭에 불을 놓은 것 같으면 얼른 가서 소리치죠. 깜짝 놀라서 물을 들이붓는 분들도 있고, 제가 같이 끌 때도 있어요."

그는 누구보다 먼저 불씨를 감지한다. 오감이 잘 반응하는 것.

오토바이에 올라 방송을 시작할 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가끔 부끄러울 때도 있다고 한다.

“솔직히 처음엔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서 좀 민망했어요. 지금도 가끔 그래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산불 한 건만 막아도, 그게 지역을 지키는 거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계속 달리며 방송을 합니다."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라고 기자가 묻자, 이 회장은 오토바이 옆에서 헬멧을 툭툭 두드리며 대답했다. “몸이 되는 날까지는 해야죠.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 같아서 하는 겁니다." 짧은 대화 후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렸다. “산불은 방심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불씨도 소중한 산을 태울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는 연기를 연신 내뿜으며 다시 들판 너머로 사라졌다. 산불이 자주나는 4월. 이성규 회장은 행여 불씨가 생성될 수 있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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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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