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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베일런트 지음/제효영 옮김/곰출판 588쪽/2만8천원 |
2016년 5월, 캐나다 석유산업의 중심이자 미국 최대 원유 공급업체가 있는 포트맥머리에서 일어난 화재로 단 하루 만에 10만여 명이 대피하고 100억 달러에 이르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저자는 흡사 분 단위로 재난 영화를 촬영하듯 그날의 화재를 집요하게 쫓는다.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포트맥머리 화재가 어느 특정 지역의 개별 사건이 아니라,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대형 화재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갈수록 더 뜨겁고 불에 더 취약해진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 예고 없이 불과 맞닥뜨려야 한다. 이 책은 인간에게 종말론적 재앙과도 같은 화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저자는 화석연료 산업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캐나다 포트맥머리의 오일 샌드 채굴 산업을 배경으로, 단테가 쓴 '지옥'이 연상될 정도로 생생한 묘사를 통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화재를 그려낸다.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저널리스트의 탐구는 우리를 단순히 화재 사건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화재의 원인을 끈질기게 추적하며 온실가스 방출과 건조화 현상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동시에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와 북미 석유산업의 얽히고설킨 역사와 기후과학의 탄생, 현대 산불이 초래한 전례 없는 황폐화, 그리고 그러한 재난으로 인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삶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의 전반부가 석유산업이 우리 삶에 끼친 영향들을 살펴 봤다면, 후반부에서는 현대 기후학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생명이 살아가는 공간'인 대기가 인간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여러 연구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인류가 지구에 살아온 이래로 대기가 인간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건 누구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 세기 전, 인류가 자동차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상 석유시대가 열린 이래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등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더욱이 인간이 만들거나 방출한 물질은 모두 대기 안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
최근 10년 동안 건조한 날씨의 영향을 받아 지정되는 화재 시즌들을 보면 기후변화가 화재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이제는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기후 환경의 복합적 영향으로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요건이 충분해졌다. 이런 새로운 화재의 양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이제 화재에 한계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1세기 화재의 특징은 이례적 현상이라기보다 인류의 중대한 성취에서 발생한 부산물에 가까워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인류는 사상 최대의 연소기관을 만든 존재이자 연소기관 그 자체가 된 호모 플라그란스, 즉 '불태우는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들로 인해, 또한 지금도 일으키고 있는 파괴들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게 될 세상은, 지금의 우리를 만든 세상과는 점점 더 딴판이 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 존 베일런트(John Vaillant)는 인간의 야망과 자연세계의 충돌을 탐색하는 데 관심을 갖고 '뉴요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글을 써왔다. 북아메리카의 장엄한 생태계와 파괴적 벌목행위로 드러난 인간의 탐욕을 다룬 '황금가문비나무'를 발표해 2005년 캐나다 총독 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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