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터프렌즈의 구사일생 세계사

이 책은 의학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주요 전환점을 조망한다. 사진은 한 의료진이 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용 모니터를 조작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닥터프렌즈의 구사일생 세계사/이낙준 지음/김영사/336쪽/2만1천원
140만 구독자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 이낙준 작가가 '의학의 역사'와 '닥터프렌즈의 오마이갓 세계사'에 이어 '닥터프렌즈의 구사일생 세계사'를 출간했다. 영상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와 풍부한 상식, 풍성한 자료, 전방위적 교양 지식까지, 역사와 의학·인문학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지식의 향연을 선사한다.
지루한 역사도 이낙준이 이야기하면 다르다. 넷플릭스의 화제작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자이기도 한 그는, 유쾌하고 생동감 있는 설명으로 '의학의 역사'라는 어려운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의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의학을 인문학과 연결하는 일에 앞장서 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탁월한 해석력과 전달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유튜버로서의 흡인력, 웹소설 작가로서의 필력으로 탄생한 이 책은 기존의 역사서나 의학서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깊이와 재미를 모두 갖춘 교양서다.
특히 이 책은 의학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주요 전환점을 조망한다. 수십 권에 달하는 책과 논문 등의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며 정확한 고증을 거침은 물론, 현대의학에서 꼭 알아야 할 결정적 장면들을 선별했다. 질병은 시대를 강타하고 무너뜨렸으며, 전염병은 제국을 몰락시켰다. 반대로 작은 치료법 하나, 우연한 발견 하나가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살려냈다. 질병과 의학의 발전은 단순한 건강 문제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온 것이다. 책은 인류 문명의 변화 과정을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안내하는 동시에 생존을 향한 인류의 치열한 투쟁을 낱낱히 비추며, 인간이 어떻게 끝끝내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딱딱하고 먼 이야기 같던 인류 생존의 의학사를 생생하게 되살리며, 독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전달한다.
현대의학의 기원을 찾아가는 28편의 여정 중 지루함을 찾을 수 없는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1장에서는 에볼라부터 소아마비까지 전염병이 역사에 미친 영향력과 치료의 발전 과정을 살핀다. 2장에서는 사랑니, 포경수술, 통풍 같은 일상 속 질병에 대한 인류의 대응 방식을 짚고 넘어간다. 3장에서는 커피, 담배, 옥시콘틴 등 중독성 물질을 둘러싼 인간의 탐닉과 갈증을 역사적으로 탐색하고, 4장에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외과 혁신의 순간들을 들여다본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특별히 의학의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우리의 삶과 사고에 깊은 울림을 주고, 여러 유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첫째, 생명과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준다. 현대의학이 수많은 실패와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알게 되고, 수백 년 동안 목숨 걸고 도전한 의료인들과 고통을 견뎌낸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용기와 끈기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품게 된다. 둘째,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현대의학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발전 과정을 통해 논쟁과 한계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힘을 얻게 된다. 과거에 '최고의 지식'으로 여겨졌던 것조차 시간이 지나면 오류로 밝혀질 수 있으며,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의학의 역사를 알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병을 부끄러워하거나 패배처럼 느끼는 대신, 질병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고 작은 아픔이나 불편에도 덜 연연하게 된다.
저자 이낙준은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유튜버 겸 웹소설 작가다. 의학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유튜브와 웹소설을 넘나들며 의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분야를 계속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에서 두 명의 의사친구와 함께 유익함을 넘어 재미까지 사로잡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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