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마른 땀'
인간의 뇌구조상 아무리 많은 것을 봐도 기억하는 것은 결국 전부가 아닌, 일부로 한정돼 있다. 갤러리전에서 열리는 이성재 초대전 'Dried Sweat(마른 땀)'을 운좋게 미리 본 기자에게 큰 인상을 준 것은 주제작인 '마른 땀'과 '낮아진 언덕, 검은 물'이란 작품이다.
'마른 땀'은 캔버스를 꽉 채운 빨간색이 눈길을 끈다. 그 위에 옅은색 커튼이 내려앉아 있는 듯한데, 상당히 아름답다. 바느질과 매듭짓기를 통해 수공예적 방식으로 풀어나간 작품이다. 미니멀하면서 수많은 매듭들이 주는 디테일이 묘한 조화로움을 이룬다.
'낮아진 언덕, 검은 물'은 공중에 샹들리에가 걸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수많은 매듭으로 완성했으며 그 매듭들이 얽히고설키면서 환영 같기도 하고, 곧 안개처럼 사라질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가는 자신의 체험과 기억을 드로잉, 영상 및 미디어, 설치 작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작가는 그동안 예술의 심미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입체 드로잉'이라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고수해왔다. 나일론 실과 비즈, 18K 금박, 봉돌 등 오브제를 이용해 '입체 드로잉'을 완성한다. 단순한 붓질로 회화를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섬세한 실을 꼬고 매듭지으며 시간과의 싸움으로 작품을 마감한다.
이성재 '낮아진 언덕, 검은 물'
그의 작품세계 속 오브제들은 페미니즘적 성향을 띠는데 이는 작가의 삶에 큰 영감을 준 이들이 어머니와 아내 등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품하는 설치 작품 역시 나일론 실과 매니큐어, 비즈 등 일상적인 재료들의 조합으로 신비로움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이 작가는 "식구들이 잠든 어둠 속에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젊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절박한 사람의 책임감과 인내로 기워진 천 조각을 떠올리며 지루하고 반복되는 작업 시간을 묵묵히 버텨낸다"고 말했다. 전시명 '마른 땀'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꺼이 희생을 감당하는 여성의 강인함에서 비롯됐다.
갤러리 전 관계자는 "물성이 돋보이는 재료를 사용한 이성재의 입체 작품은 시각·촉각적으로 따뜻함과 섬세하고 신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16일부터 6월13일까지. (053)791-2131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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