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응급의료, 정부가 외면했다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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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19 16:59  |  발행일 2025-05-19
강승규 사회2팀장

강승규 사회2팀장

2023년 3월, 대구 한 건물에서 추락한 여고생 A양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구급대원에 의해 급히 이송됐지만, 대구 지역 4곳의 병원에서 연이어 수용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결국, A양은 병원에 도착하지도 못한 채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병원의 책임을 인정했다. 응급환자를 대면조차 하지 않고 거부한 것은 명백한 응급의료법 위반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해당 병원들에 시정명령, 보조금 중단, 과징금 처분을 내렸고, 사회는 분노했다. "병원이 사람을 죽였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 발 물러나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 정말 제대로 된 '물음'을 던지고 있는가. 문제의 핵심은 병원이 아니라, 병원이 이렇게밖에 대응할 수 없는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을 방치해온 정부다.

오늘날 응급실은 터질 듯한 압박 속에 돌아가고 있다. 병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야간 협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응급의학과 의사 몇 명이 중증도 분류부터 초기 진료, 병상 조율까지 병원의 응급 기능을 사실상 전담하고 있다. 신경외과, 외과, 정신과 전문의는 밤이 되면 자리를 비우는 게 관행처럼 굳어 있다.

수용하면 법적 책임이 따르고, 거부하면 도덕적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 이 양극단 사이에서 희생되는 것은 결국 환자의 생명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답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이 나라는 응급의료 인프라에 어떤 투자와 개혁을 해왔는가. 지방의료 공백을 줄이기 위해 어떤 결단을 내렸는가. 2025년이 된 지금도 야간 협진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이 현실을 왜 외면해왔는가. 그러나 누구도 책임 있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 문제는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응급의료 체계 문제를 장외투쟁의 이슈로 삼은 적이 있었는가. 전공의 탈진과 병원 무력화를 국회에서 단 한 번이라도 중심 의제로 다룬 적이 있었는가. 병원에만 책임을 묻기 전 제도를 만든 정치인부터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 사회는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며, 응급실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그 절박함에 공감한다. 그러나 병원만 겨누는 칼은 언제나 무디다. 구조는 바뀌지 않고, 생명은 계속 목숨값을 치른다. 이번 사건은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나라는 생명보다 체면을, 구조 개선보다 책임 전가를 우선시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나부터 바꾸겠다"는 책임 정부다.

이제는 병원만을 탓하는 데서 멈춰야 한다. 고장 난 시스템 위에 아무리 높은 윤리와 사명을 쌓아도, 결국 그 위태로움은 환자의 생명으로 돌아온다. 응급의료는 단지 의료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고 정치의 몫이다. '누가 잘못했는가'만을 묻는 사회에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말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골든타임 안에서 구조가 아닌 운에 생사를 맡기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책임 있는 이들이 먼저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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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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