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거장의 품격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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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3  |  수정 2025-05-23 07:03  |  발행일 2025-05-23 제26면
높아지는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

호평 많지만 '어렵다'는 반응도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 션 스컬리

쉽고도 명확한 작품 설명 눈길

8월17일까지 대구미술관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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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훈 문화팀 차장
거장의 작품에는 시대정신을 품은 담론이 자리한 경우가 많은데 그 내부에 스며든 메시지를 간파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역시 '비디오 아트'를 예술의 한 장르에 편입시키며 인류 진보의 산물인 테크놀로지를 예술과 결합해 당대의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바 있다. 당시로선 최신 매체였던 TV를 활용한 백남준의 전시 및 작품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매우 파격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거장의 작품은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원동력을 만들어내고 아름다움과 감동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는데, 지금은 현대미술이 이러한 역할을 상당부분 담당하는 중이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 중 만난 상당수 관람객들은 현대미술과 관련한 작품이나 전시에 대해 호평하면서도 '너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미술시장에서 주류를 이루는 추상회화의 경우 고도화된 특정 개념을 품은 사례가 많아 미술담당 기자들조차도 "이 작품 왜 이리 어려워"라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악의 사례는 작품을 만든 작가조차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정의 내리지 못할 때다. 특히 정치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기자가 이러한 사례들을 마주하고 기사를 작성할 때는 더 곤란해지곤 한다. 개인적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이러한 사례는 단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명확한 세계관을 가진 작가의 경우 개념 설명이 어눌하더라도 작품이 품은 메시지를 기사로 전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오는 8월17일까지 대구미술관이 선보이는 '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展(전)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늦깎이 미술담당 기자에게 추상회화를 바라보는 기준을 다시 한번 정립한 전시로 기억된다. 이번 전시에서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 션 스컬리는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대표작과 신작을 아우르는 회화와 드로잉, 판화 등을 선보인다.

지난 3월 대구미술관에서 있었던 언론간담회 당시 션 스컬리는 '추상'과 '구상'의 구분을 노래에 비유했는데, 이는 기자가 그동안 들었던 어떠한 장르 관련 설명보다 명확한 설명이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나는 구상과 추상의 차이를 음악을 통해 설명하고 싶다. 구상은 가사가 있는 노래 같은 것이고 추상은 가사가 전혀 없는 노래"라는 션 스컬리의 명쾌한 설명은 마치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은 시원함을 주었다. 미술전공자의 시선으로 보면 별일 아닐 수 있겠지만 그랬다.

션 스컬리의 회화에서 두드러지는 가로세로 격자무늬 패턴에 삶의 고뇌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션 스컬리는 어린 시절 일했던 판지공장에서의 노동 경험이 자신에게 '가로와 세로의 형태'에 대한 강박관념을 심어주었다고 했다. 언뜻 성의 없는 설명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진지했던 작가의 표정을 통해 삶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션 스컬리가 간담회 참석 기자들을 위해 매우 천천히 영어를 구사한 점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는 그가 80세 고령인 점도 있었지만, "내가 파슨스디자인학교에서 강의할 때 한국 학생들이 많아 말을 천천히 한다"라는 재치있는 발언을 통해 거장의 여유와 품격을 엿볼 수 있었다. 노(老) 작가의 명확한 개념설명 덕분에 작품에 대한 이해는 높아졌고 감동은 배가 됐다. 이 전시를 한 번 더 보러 가야겠다.임훈 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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