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도심 속 명소 ‘대구 서구 이현공원’…동네 마실 가듯 편안한 숲속 쉼터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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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05 19:23  |  수정 2025-06-05 19:26  |  발행일 2025-06-05
이현공원에 들어서면 너른 잔디광장 저편에서 파란 사내가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넨다.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 맨'으로 배려와 존중을 의미한다.

이현공원에 들어서면 너른 잔디광장 저편에서 파란 사내가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넨다.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 맨'으로 배려와 존중을 의미한다.

길옆으로 이어지는 그늘 짙은 숲과 번쩍 솟구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은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신도시 같다. 주변의 분위기에 비해 좁게 느껴지는 도로만이 이곳이 오래된 동네임을 되뇌게 해 준다. 이현(梨峴)은 배나무고개라는 뭉클한 뜻을 가졌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현'과 '공단'을 따로 떼어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현동은 예부터 섬유와 염색이라는 대구전통 주력산업의 심장기능을 담당했던 동네다. 물론 지금도 이현은 공단이다. 이 공단지대 한가운데에 지난겨울부터 여름을 기다리게 한 이현공원이 있다.


◆ 이현공원


너른 잔디광장 저편에서 파란 사내가 인사를 한다. 어이쿠, 안녕하세요! 흠칫 놀랐지만, 반갑고 예의바르게 답례를 한다.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는 파란 사내는 세상 유명한 '그리팅 맨'이다. 유영호 작가의 작품으로 배려와 존중이라는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 답례를 하며, 조금 성급하게 고동치던 마음이 겸손과 평화로 잔잔해 진다. 휘 눈 닿는 그늘마다 벤치가 있고, 벤치마다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다. 성큼 다가선 배나무에는 어린 배들이 다닥다닥 풍성하게도 달렸다. 해당화의 초록 열매도 통통하고 단단하다. 수양버들 드리워진 생태 연못에 분수의 물줄기가 차르르 차르르 부서지고, 새들은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쉴 새 없이 재재댄다.


수양버들 드리워진 생태 연못에 분수의 물줄기가 차르르 차르르 부서진다. 이현공원의 인기 포토스팟이다.

수양버들 드리워진 생태 연못에 분수의 물줄기가 차르르 차르르 부서진다. 이현공원의 인기 포토스팟이다.

수국과 마리골드, 스텔라원추리, 달리아 등 여름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이현공원은 과거 주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하던 야산으로 구릉진 산세 그대로 공원을 조성했다.

수국과 마리골드, 스텔라원추리, 달리아 등 여름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이현공원은 과거 주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하던 야산으로 구릉진 산세 그대로 공원을 조성했다.

수국이 피어나고 있다. 보랏빛의 숙근샐비어를 보며 혼자 속으로 '사루비아'라고 불러본다. 자엽펜스테몬은 어찌 저리 여리고도 우아하나. 오렌지 빛의 마리골드와 노란색의 스텔라원추리는 태양 같은 얼굴로 선명하고 왕성하게 피어 있다. 분홍 달리아의 큼직하고 풍성한 꽃송이에 코를 박는다. 봄꽃 루피너스는 슬슬 지고 있다. 루피너스의 꽃말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용기'라고 한다. 나비가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닌다. 여기저기 스프링클러가 뿜어내는 물줄기가 바닥을 때리고 튀어올라 복숭아뼈를 적신다.


이곳은 과거 인근 주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하던 야산이었다. 처음 공원을 만들기로 한 것은 1965년이라니 정말 오래전이다. 이후 일부만 개발된 채 장기 미집행 공원으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2015년부터 사유지를 매입하고 다양한 공원시설을 조성하는 등 4년여에 걸친 재정비 사업을 통해 1만9천437㎡ 규모의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현공원은 서구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고 한다. 구민운동장을 중심으로 동쪽에 동원, 서쪽에 서원, 남쪽에 남원이 위치하고 세 정원을 크게 에둘러 바람소리길이 나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오감숲길, 체육시설, 철쭉원, 유아숲체험원, 잔디광장, 생태연못 등이 자리한다. 구민운동장 스탠드 구석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뜨거운 햇빛 속에서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이도 있다. 동원의 한산한 오솔길 벤치에 앉은 세 노인이 하얀 운동장을 해변 보듯 한다.


서구는 야산의 구릉진 산세 그대로, 훼손하지 않고 버려지는 공간이 없도록 계획하고 조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10도 경사의 완만한 지대는 생김 그대로 공연장이 되는 잔디광장이다. 이곳에서 온갖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 봄날에는 공연도 보고 여유롭게 피크닉도 즐기는 '숲속 음악 소풍', 가을날에는 노을 속에 펼쳐지는 '이현노을콘서트', 여름엔 '쿨한 콘서트' 등이 열렸다. 이외에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숲 에코 탐험대', 다양한 체험과 공연·전시를 접목한 '메기의 추억', 토요일의 버스킹, 대형 야외콘서트인 '서풍'과 '청바지콘서트' 등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온갖 이벤트들이 있었다.


이현공원 동원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꽃밭을 서성이며 갈라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이현공원 동원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꽃밭을 서성이며 갈라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곧장 서대구공단의 푸른 지붕이 내다보인다. 서북쪽으로 KTX 서대구역사도 보이고, 달서천 너머 염색공단도 펼쳐진다.

전망대에 오르면 곧장 서대구공단의 푸른 지붕이 내다보인다. 서북쪽으로 KTX 서대구역사도 보이고, 달서천 너머 염색공단도 펼쳐진다.

동원의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꽃밭을 서성이며 갈라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곧장 서대구공단의 푸른 지붕이 내다보인다. 서북쪽으로 KTX 서대구역사도 보이고, 달서천 너머 염색공단도 펼쳐진다. 저 우뚝한 열병합발전소 굴뚝은 1992년 83타워가 완공되기 이전까지 대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평리동 방향의 문화로가 멀어진다. 저 길을 따라 계속 가면 달성공원을 만난다. 도로 좌측 아파트단지와 공단 사이의 녹지대는 서구 그린웨이의 단풍원이다. 우측은 서구청소년수련관을 둘러싸고 있는 녹지대로 그 또한 서구 그린웨이의 일부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쪽으로 평리동 방향의 문화로가 멀어진다. 아파트단지와 공단 사이에 서구 그린웨이가 흐른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쪽으로 평리동 방향의 문화로가 멀어진다. 아파트단지와 공단 사이에 서구 그린웨이가 흐른다.

서구 그린웨이의 물놀이장. 눈이 부셔서 꿈처럼 보이는 저것은 진짜 숲속의 물놀이장이다. 숲 너머 도로가 지척이지만 새 소리 때문에 차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서구 그린웨이의 물놀이장. 눈이 부셔서 꿈처럼 보이는 저것은 진짜 숲속의 물놀이장이다. 숲 너머 도로가 지척이지만 새 소리 때문에 차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 서구 그린웨이


생태연못을 지나 청소년수련관과 문화회관 사이 오솔길로 빠져나가면 곧장 서구 그린웨이다. 눈이 부셔서 꿈처럼 보이는 저것은 진짜 숲속의 물놀이장이다. 숲 너머 도로가 지척이지만 새 소리 때문에 차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서구 그린웨이는 2020년에 완공된 가로 숲이다. 북쪽의 서평초등학교 맞은편에서부터 남쪽의 대구의료원까지 왕복 7㎞ 길이로 이현공원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원래는 서대구공단과 주택가 사이의 완충녹지대였다. 대구의 섬유산업은 19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차츰 쇠락의 길을 걸었고 자연스레 완충녹지도 방치됐다. 죽은 나무와 잡초가 뒤엉켜 흉물스럽게 변해갔고 머지않아 다니기 무서운 우범지대가 되어 버렸다. 서구는 완충녹지가 가진 공간적 가치에 주목했다. 잘 가꾸면, 도심 속 녹음이 가득한 산책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2017년부터 3년간 풀과 나무를 걷어내고, 산책길을 다듬고, 다양한 테마를 담아 그린웨이를 완성했다.


서구 그린웨이의 장미원. 메모이레와 핑크퍼퓸, 블루리버 등 22종, 1만5천여 그루의 장미가 식재돼 있다. 철 지난 장미들이 많지만 여전히 화려하게 미모를 뽐내고 있다.

서구 그린웨이의 장미원. 메모이레와 핑크퍼퓸, 블루리버 등 22종, 1만5천여 그루의 장미가 식재돼 있다. 철 지난 장미들이 많지만 여전히 화려하게 미모를 뽐내고 있다.

그린웨이는 배롱원, 단풍원, 문화원, 이현공원, 연결로, 야생화원, 향기원, 장미원, 백합원, 암석원, 상록수원, 테라피원으로 이어진다. 구간마다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벤치와 팔각정 등 휴식공간도 넉넉하다. 문화원 앞에서 남쪽으로 향한다. 수업을 끝낸 초등학교 아이들이 숲을 가로질러 집으로 간다. 문화회관 앞, 학교 앞, 중리네거리 등 학교와 근접한 도로의 횡단보도 어느 곳에나 노란 조끼를 입고 깃발을 든 어르신들이 계신다. 향기원에는 목서와 아그배, 매화, 수수꽃다리 등 향기가 나는 수종들로 가득하다. 장미원에는 메모이레와 핑크퍼퓸, 블루리버 등 22종, 1만5천여 그루의 장미가 식재돼 있다. 몇몇 사나이들이 장미원을 돌보고 있다. 철 지난 장미들이 많지만 여전히 화려하게 미모를 뽐내고 있다. 백합원에 백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제일 많았다. 곱창골목 이정표와 함께 퀸스로드 패션타운의 지붕들이 보인다. 이 푸른 길이 우리 집까지, 그대 집까지, 계속되는 상상을 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성서방향 30번국도 달구벌대로를 따라 가다 감삼네거리에서 우회전해 2㎞정도 직진하면 된다. 대구서구문화회관이나 서구청소년수련관, 서구구민운동장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대구2호선 감삼역에 내려 (1번 또는 4번 출구) 중리네거리 방향 당산로를 따라 줄곧 북향해 올라간다. 약 800m 가면 그린웨이를 만난다. 암석원, 장미원, 향기원, 야생화원을 지나 슈퍼섬유개발센터를 지나면 중리네거리, 중리초등학교를 지나고 곧 대구서구문화회관이다. 서구문화회관을 이용하면 야외무대 왼편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그리팅 맨과 정면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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