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이재명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여러 차례 힘줘 말한 약속이다. '국민통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12·3 계엄 후 '심리적 내전'이라 할 정도로 분열과 갈등이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국민분열을 그대로 두고서는 경제성장, 민주주의 복원, 한반도 평화 등 어떤 과제들에서도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 오래된 국민통합 과제
실은 '국민통합'은 꽤 오래된 담론이다. 예컨대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는 각각 복지정책과 국가균형발전정책을 통한 계층간, 지역간 사회통합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이명박정부는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를 설치해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모양새까지 갖췄다. 이후 정부들도 모두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를 운영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수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심해졌다. 과거 정부들의 국민통합 노력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결과다. 무엇보다 정책 뒷받침 없이 말만 요란한 경우가 많았다. 선거 때만 주장하다 폐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대표적인 예다. 정권이 바뀐 뒤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해 좌초된 사례도 있다. 노무현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이 그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과 정치권이 정파적 계산을 앞세워 국민을 갈라치고 분열을 키운 경우다. 가장 심했던 정부는 윤석열정부다. 대통령이 야당을 가리켜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이라 칭하고 국회를 무력으로 침탈하기까지 했으니 경악할 지경이었다.
이재명대통령이 취임 후 2주동안 보여준 국민통합 행보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취임선서를 마치고 첫 일정으로 여야 6당 대표와 비빔밥 오찬을 함께한 것, 기존의 시민사회수석실을 경청통합수석실로 확대 개편한 것도 국민통합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실용 노선도 국민통합에 도움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의 초심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국민통합을 위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통령의 국민통합 철학이 정부의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 깊이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각 부처와 공공기관들이 국민통합 정책들을 내놓고 전방위적으로 추진할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망국의 분열을 넘어 통합사회로 향해가는 대전환'의 전기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국민통합 철학을 공직사회 전반에 관철해 내는 대통령의 리더십임은 물론이다.
둘째, 정치권은 물론 기업가·언론인·종교인·교육자 등 민간 영역의 주요 주체들과도 국민통합의 철학과 방향을 폭넓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도 대통령의 '소통과 상생의 리더십'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각계와의 소통과 토론을 통해 '연대와 공화(共和)의 대동(大同) 사회'를 세워내는 일에 튼튼한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 국민통합 '정책'의 중요성
셋째, 세대·성·계층·지역으로 찢긴 나라를 다시 묶어내기 위한 '실효적인 정책'들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분열의 근저에는 대개 구조화된 이해관계의 충돌이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세계관의 분열을, 나아가 정보 격차와 심리적 분열을 낳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화된 이해관계의 분열에 대한 정확한 정책 처방이 중요하다. 예컨대 고용기회를 창출하는 경제성장 정책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정책, 2030세대의 박탈감 치유를 위한 세대통합 정책 등을 섬세하게 설계해 분열의 구조적 근거를 해체해 갈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학업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고 부서진 사다리를 다시 세우며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사회통합 교육정책'의 중요성도 간과되면 안된다.
넷째, 땅에 떨어진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세대·정파·계층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은, 전형적인 불신사회다. 맹목적인 진영대결과 반지성주의, 혐오와 선동이 확산하기 좋은 토양이기도 하다. 이래서는 국민통합은 아예 불가능하고 민주주의도 유지될 수 없다. 가장 큰 책임은 역시 권력층과 정치권에 있다. 자의적이고 불공정한 권력 행사, 반칙과 편법을 통한 기득권 유지와 축재가 대표적인 예다. 이 역시 윤석열정부 때 가장 심했다. 권력자의 일탈을 경계하는 '법치주의'와 힘없는 시민을 보호하는 '억강부약의 리더십'이야말로 신뢰와 통합의 사회로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
다섯째, 가짜뉴스 추방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민통합과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 정치권 시민 사이에 정확한 정보의 유통과 그에 기반한 토론과 협상 그리고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는 망가진 공론장을 아프게 목도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때는 심지어 대통령이 직접 가짜뉴스를 유포하면서 불법과 폭력을 선동하기까지 했다. 국민통합과 신뢰사회 건설 나아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가짜뉴스 추방과 공론장의 정상화는 필수적인 과제다.
# 야당도 협조해야
최근 정치권의 논란도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야당이 3대 특검법에 대해 '국민통합을 해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매우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야당이 여전히 12·3내란과 김건희 등의 권력형 범죄와 선을 긋지 못하고 있어서다. 자신의 법적 책임을 가리기 위한 정치공세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둘째는 12·3내란과 국정농단 단죄가 헌법과 국민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핵심인 민주주의 사회라도 헌법 파괴와 공권력 사유화는 자유와 관용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3대 특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에서의 건강한 국민통합'으로 가는 첫발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야당은 지난 6개월 동안 12·3내란을 옹호하면서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켰던 과오를 반성하고 지난 3년 동안 윤석열-김건희와 함께했던 권력형 범죄를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재건을 위해 국민이 야당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이다.
물론 대통령과 여당에게도 주의할 점이 없지 않다. 3대 특검이 오로지 헌정질서를 바로잡고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한다는 원래 취지를 벗어나지 않도록, '법치주의의 한계' 내에서 '절제의 지혜'를 잃지 않는 것이다.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함께 지켜보며 경계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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