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기 'An Aggregation'
10년 전쯤인 것으로 기억된다. 경북 경주 우양미술관에 전시된 박선기 작가의 작품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기와집이 공중에 붕 떠서 있는데 작고 검은 덩어리들을 모자이크식으로 모아서 만든 작품이었다. 검은 덩어리는 숯조각이다. 숯조각을 하나 하나 공간에 꿰어 매듯 매다는 방법으로 완성했다. 이는 기존의 집과는 전혀 다른 시각적 아름다움을 줬다. 우주에 떠 있는 집이라고나 할까. 신비로웠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어서 021갤러리(대구 동구 안심로 54, 1층)에서 열리는 박선기 작가의 개인전 'Void and Vibration(비움과 진동)'에 큰 기대를 안고 찾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실재와 환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설치미술이 관람객을 반긴다. 입체미술이라고 부르기에도, 평면작품이라고 말하기에도 애매모호가 새로운 공간적 언어를 마주하게 된다. 선의 떨림과 공간의 숨결을 통해, 비움이 진동으로, 선이 시간으로 변하는 감각의 장이 펼쳐진다. 고요한 선이 공간을 흔들고, 비움이 생명을 품으며, 시간과 존재가 교차한다.
조각가이자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박작가는 박 작가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숯설치작품을 비롯해 조각, 부조, 회화, 드로잉, 모빌 등 여러 조형 형식을 아우르는 신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박 작가는 숯그림으로 명성이 높은 이배 작가와 함께 숯의 상징성을 미술작품으로 잘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박 작가가 숯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숯을 나무의 마지막 형태이자 에너지의 시작점으로 바라본다. 숯을 통해 찰라적 생을 넘어서 영원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박 작가의 다양한 작품 가운데 숯을 활용한 3차원의 공간 드로잉 같은 원근법적 설치 작품에 특히 눈길이 간다. 이 작품들은 관람객의 인식과 공간을 확장하며, '무존재로서의 존재'를 표현한다.
박선기 'An Aggregation'
박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선은 떨리고 공간은 숨을 쉰다. 무게를 잃은 선은 여백을 가로지르며 흔들리고, 그 떨림은 보이지 않는 구조와 감각의 파장을 그린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각이 머무는 '장'임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숯과 나일론 줄, 그들의 무게와 투명성, 중력과 떨림은 서로 부딪히며 진동하는 조율을 만들어내고 존재를 드러낸다. '비움'이 곧 '움직임'이 되고 '선'이 곧 '시간'이 되는 과정을 기록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중앙대 조소과 졸업 후 밀라노 국립미술원에서 수학했다. 현재 국내를 비롯한 유럽, 미국, 중동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는 오는 8월23일까지. 일·월 휴관.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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