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희망을] 청각·언어장애 앓는 18세 현아 “홀로된 아빠위해 늘 웃어요”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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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25 20:48  |  발행일 2025-06-25
정부 보조금 등으로 겨우 생활
병으로 쓰러진 아빠 위로하며
농아인체전 볼링 단체전서 ‘금’
대구 실업팀 입단하는 겹경사도
20일 오전 대구 남구의 한 빌라에서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는 현아(가명·18)가 제22회 전국농아인체육대회에서 딴 금메달을 메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0일 오전 대구 남구의 한 빌라에서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는 현아(가명·18)가 제22회 전국농아인체육대회에서 딴 금메달을 메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0일 오전 대구 남구의 한 빌라에서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는 현아(가명·18)가 아버지와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0일 오전 대구 남구의 한 빌라에서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는 현아(가명·18)가 아버지와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작은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현아(가명·18).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건 작은 귀에 고정된 인공와우(청력 손실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기기) 한 쌍과 수화뿐이다. 아빠는 늘 웃지만 딸에 대한 미안함은 숨길수 없었다.


◆ 잃어버린 소리, 무너진 일상


현아는 선천적 청각 1급·언어 3급 장애를 안고 있다. 생후 5개월 무렵, 바람에 창문이 닫히면 큰 소리가 났는데도 현아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하니 달팽이관이 좁아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두 살에 왼쪽 귀, 열세 살에 오른쪽 귀에 달팽이관 기능을 보조하는 인공와우를 심어야 했다.


그런데 작년 연말, 왼쪽 인공와우 외부장치가 고장 났다. 새 장치를 달려면 1천만원 이상이 필요했다. 정부보조금, 기초생활수급비 등으로 겨우 생활하는 현아네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대학병원과 한 대기업이 800만원을 지원해주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본부도 도와줘 지난 2월 장치를 교체할 수 있었다.


현아 엄마는 지난해 4월 하늘나라로 갔다. 1999년 당한 교통사고로 동반된 합병증이 엄마를 늘상 괴롭혔다. 그 곁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아빠는 엄마가 세상을 등지자 무너졌다. 병원에선 심전부전증, 고혈압, 갑상선 기능저하증 진단을 받았다. 쓰러졌던 아빠가 가장 먼저 집어든 건 약이 아니라 수화사전이었다. 기억력이 예전같이 않아 아무리 수화를 되뇌어도 사전 없인 대화가 되질 않어서다.


아빠는 조용히 말했다. "아내가 하늘의 별이 된 날엔 허탈감과 상실감만 남았습니다. 현아가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것도 다 제 탓 같아요. 힘들어하던 제게 현아가 '괜찮다'며 웃어주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힘을 내기로 했어요."


◆ 볼링으로 되찾은 꿈, 새 출발선에 선 모녀


청각장애 특수학교 고교 과정 3학년인 현아는 최근 진로를 정했다. 틈날 때마다 취미로 하던 볼링이 생업이 됐다.


달서구의 한 볼링장에서 훈련을 하던 현아에게 이달 들어 경사가 이어졌다. 지난 10~14일 열린 제22회 전국농아인체육대회 볼링 단체전에 대구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것. 흐뭇한 미소를 짓던 아빠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지역 한 실업 볼링팀과의 계약서가 담겨 있었다. 지난 20일부터 훈련생 신분으로 오후 일과를 보내고, 이 실업팀 소속으로 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현아는 "그림 그리기도 좋고, 볼링도 좋아서 졸업 후에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고민이었어요. 대학 진학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좋은 제안을 받아 큰 고민을 덜었어요. 대신 첫 월급을 받으면 아빠에게 어떤 선물을 드릴까라는 행복한 고민이 생겼어요. 볼링도 더 열심히 할게요"라며 수줍게 수화를 건넸다.


아빠도 "시합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했습니다. 아빠가 있을 때 더 긴장을 하는지 평소 점수가 나오질 않아서 현아가 제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휴게실에서 기다린다고 하니 제 실력을 발휘하더라고요. 멀리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후원금 모금계좌 : 기업은행 035-100411-01-431 초록우산어린이재단


▶ 후원문의(기부금영수증 발행 등) : 초록우산 대구지역본부 053-756-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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