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 17일 부당 합병·회계 부정 등 19개 혐의로 기소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날 판결은 기계적인 상고로 기업활동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친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시에 지난 10년간 자신의 발목을 잡아 왔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이 회장은 회사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이 반도체 경쟁력을 회복하고 AI(인공지능)·바이오 같은 신성장 동력을 키워 삼성을 다시 한번 우리 경제의 견인차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동시에 우리는 대구의 삼성상회 개관에도 이 회장이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삼성상회는 이병철 창업주가 대구 중구 인교동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만든 삼성의 모태다. 북구 옛 제일모직 부지위에 조성된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내에 예전 건물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복원해 놓고도 9년째 문이 닫혀 있다. 삼성창조경제센터내에는 제일모직내 이병철 창업주의 집무실과 여직원 기숙사도 복원돼 있으나, 이 역시 삼성상회처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삼성이 다시 뛰기 위해선 과거를 복원하고, 현재를 공유하며, 미래를 약속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삼성상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뉴 삼성' 비전에는 AI 등 첨단산업의 강화뿐 아니라 삼성의 창업정신인 '사업보국(事業報國)'도 포함돼 있다. 삼성상회는 사업보국의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삼성의 DNA를 국내외에 알릴 수 있는 명소로도 기능할 수 있다. 빠른 시일내로 삼성상회가 개관돼, 삼성의 출생지 대구에서 새롭게 도약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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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 또 좌초 위기, 국힘 어디까지 추락할 텐가
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원회가 출범 10여 일 만에 좌초 위기다. 혁신위가 내놓은 계엄·탄핵 사죄, 지도체제 개편 등 혁신안에 대해 주류측의 반발이 워낙 드세기 때문이다. 국힘은 오늘 의원총회를 열의 의원들의 전체 뜻을 확인할 작정이지만, 혁신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더욱이 윤 위원장이 제시한 인적 쇄신안이 수용될 여지도 희박하다. 앞서 국힘은 인적 청산을 요구한 안철수 혁신위를 닷새 만에 좌초시킨 바 있다.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주류 측의 위기감 없는 기득권 집착에 당이 회생 불능의 늪으로 빠지는 형국이다.
국힘은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도 퇴행만 거듭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전한길 씨의 입당을 허용한 당의 대응은 어처구니가 없다. 전 씨는 전당대회에 개입할 뜻을 내비치며 쇄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아스팔트 보수나 극우세력과 분명히 선을 긋기를 희망하는 민심과 역주행하는 행태는 대중정당의 길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다. 앞서 송언석 비대위원장 등 지도부는 윤상현 의원이 주최한 '윤석열 어게인' 성격의 행사에 참석, 비난의 화살을 자초했다. 이러다 보니 야당의 존재감은 사라졌고, 인사청문회 등을 통한 정권 견제도 제대로 못 하는 바람에 야당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오늘 국힘 의총은 당을 쇄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혁신위의 쇄신안은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일종의 극약 처방이다. 부디 선당후사의 심정으로 혁신의 동력을 살려, '탄핵의 바다'를 건너길 바란다. 지금 야당은 각종 개혁법안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과감한 혁신을 바탕으로 여당의 독주를 막는 책무는 보수 재건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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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폭우·폭염이 뉴노멀, 기후 위기 대응체계 재정립해야
지난 16일부터 전국 곳곳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충남 서산은 17일 시간당 114.9㎜의 비가 내려 시간당은 물론 하루 최다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루 강수량 기준 200년 만에 한 번, 시간당 강수량 기준 100년 만에 한 번 내리는 강수량을 기록한 곳도 많다. 폭우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20일 오전 11일 기준 닷새간 14명이 숨지고 12명이 실종됐다.
이번 폭우로 대구경북에선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주택 침수 등 피해가 잇따랐다. 대구 성명여중 일대 옹벽 붕괴위험으로 주민들이 대피했고, 경주·성주 등지에선 도로 침수로 통행이 제한됐다. 충남, 경남의 피해가 크지만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한 지하주차장 침수, 2023년 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를 떠올리면 남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국지성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전국에서 잇따른다. 이는 기후 위기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미흡한 대응이 부른 참사다.
올해도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이른 폭염에 이은 폭우 피해가 막대하다. 비가 그친 20일부터는 폭염 경보속에 불볕더위가 찾아올 전망이다. 이젠 폭염·폭우 같은 극단적인 여름 기후가 일상화되며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됐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체계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배수·저류시설이 수십 년 전 강수량 기준으로 설계돼 있으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의 폭우 대책이 해외 선진국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허투루 들어선 안된다. 이상기후로 더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후 위기 대응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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