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규완 논설위원
# 자유무역의 종언=세계 일인당 실질소득이 급격히 늘어난 때는 18세기 말이다. 글로벌 교역량 증가, 즉 자유무역 확산이 변곡점이 됐다. 국가 간 교역은 국제분업을 촉진했고 분업은 생산성과 기술 숙련도를 제고했다.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용성을 설파한 것도 그즈음이다. 애덤 스미스의 절대생산비설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생산비설이 국제분업의 이론적 토대가 되면서 자유무역주의 사조는 빠르게 확산됐다. 오늘날의 국제분업 체계는 더 정치(精緻)하고 촘촘해졌다. 전 산업에 걸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글로벌 밸류체인이 정교하게 작동하며 분업의 효용성을 창출한다.
자유무역과 달리 보호무역은 세계 경제위기의 단초가 되곤 했다. 경제 대공황을 심화시킨 주범도 보호무역이다. 1930년 미국은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해 수입 공산품에 평균 59%의 관세를 물렸다. 이는 유럽·아시아의 보복관세를 촉발했다. 세계 교역량이 25%나 줄면서 대공황의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작금, 보호무역주의의 망령이 다시 어른거린다. 세계 경제 1강의 뻘짓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세계무역기구) 중심의 다자무역체제를 부정하고, FTA(자유무역협정)를 일방 파기했다. 트럼프의 물색없는 관세 인상은 필시 자유무역 사조를 퇴조시키고 글로벌 밸류체인을 파괴할 것이다.
# 트럼프의 오만=한미 무역협상 타결 후 트럼프는 "한국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대통령인 내가 선택하는 투자를 위해 3천500억달러를 제공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을 소유·통제한다? 트럼프 특유의 허세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언사다. 트럼프의 복심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과욕은 일종의 추임새다. "한국의 대미 투자펀드 수익 중 90%를 미국이 가져간다"며 지레 압박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수익 구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악마 같은 디테일 협상의 험난함을 예고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수금 활동으로 변모했다"고 비판했다. 보수 성향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소장은 "미국의 관세 부과는 글로벌 갈취"라고 직격했다. 트럼프는 한 수 더 떴다. SNS에 "정상회담 때 한국이 추가로 약속한 '큰 액수의 투자'를 공개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추가 투자? 누구 마음대로?
# 미국에 부메랑=트럼프의 관세전쟁으로 미국 수입관세율이 연초 평균 2.7%에서 18.7%로 오른다는 게 예일대 예산연구실의 분석이다. 1934년 이래 91년 만에 최고치다. 8월 7일부터 적용되는 교역상대국별 상호관세가 부과될 경우의 영향까지 반영했다. AP통신의 지적대로 트럼프는 관세를 외국에 부과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론 미국 수입업체들이 관세를 낸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앨런 울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마따나 "미국 소비자는 큰 패배자"다.
반도체, 의약품 등 핵심 산업의 파장(波長)도 불가피하다. 50%의 철강 관세는 미국 자동차제조업의 생산원가를 끌어올릴 게 뻔하다. 글로벌 공급망 압력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미국의 경기둔화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고용 쇼크는 벌써 현실이 됐다. 7월 비농업부문 일자리는 7만3천명 증가에 그쳐 전문가 예상치 10만명을 한참 밑돌았다. 트럼프의 항변이 가관이다. "통계 조작"이라나. 누굴 위한 분탕질인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 자유무역에 퇴행하는 약탈적 관세의 결말이 자못 궁금하다.
논설위원
18세기말 자유무역 사조 확산
세계 일인당 소득 크게 늘어
보호무역주의 망령 다시 어른
공급망 압력, 경기둔화 우려
"미국 소비자는 큰 패배자"

박재일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