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 함께] 한여진 ‘환대’

  • 신용목 시인
  • |
  • 입력 2025-09-29 06:00  |  발행일 2025-09-28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이름을 알려달라 했는데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어서


마당 한가운데로 돌을 던졌다


괜스레 심통을 부렸다


한 번 이름을 들어버리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요


돌아보니 어릴 적 나를 받았다는 산파였다


그러고 보면 그건 몇 번째 생이었더라


(중략)


바로 이곳에서 부인께서는 남편분에게 목 졸라 살해당하셨습니다. 거 그만 좀 뛰래도.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이란 말이죠. 선물 포장이 아직 덜 되었는데요. 저 오살할 놈, 염병할 놈, 정말 유감입니다. 난 골덴 바지 입기 싫다니까. 자기야, 사씨 아저씨네 집에 이것 좀 가져다줘.


소란이 끝났을 때 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 한여진 "환대"


마당 한가운데서, 우리는 이름도 모른 채 서로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해와 오해가 섞이고 투정과 다정이 번지며 끔찍한 와중에도 아이는 자란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서로의 전부를 껴안는 것. 마당에서의 모든 일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마당에서의 모든 일들을 불러들인다는 것. 우리는 그랬어야 했다. 빙그레 웃고 있는 서로의 마음 그 희고 환한 마당 한가운데에 그저 돌을 던지고 왔어야 했다. 파문이 마당을 호수로 만들며 이번 생의 시작을 다 지워버리게 말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