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대구의 의료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메디시티 대구'라는 이름으로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의료관광 활성화, 지역 의료기관의 질적 도약, 국내외 학술교류의 확대 등 메디시티 협의회가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메디시티 대구'라는 브랜드를 전국에 각인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대구 의료관광이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만든 것이야말로 협의회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때 대구 의료를 하나로 묶어내던 이 협의회가 해산되었을 때, 지역 의료계는 방향타를 잃은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 병원과 대학, 기업, 행정이 함께 모여 논의하던 협력의 장이 사라진 아쉬움은 그만큼 컸다.
하지만, 이제 대구시는 메디시티 협의회를 'AI 바이오 메디시티 협의회'로 재출범시키며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이름에 담긴 'AI'라는 두 글자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의료와 바이오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진단, 치료, 신약개발, 임상데이터 분석 등 의료 전 분야를 혁신하고 있다. 대구가 AI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의료산업의 디지털 대전환을 선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의료와 데이터, 인공지능을 결합한 '스마트 메디컬 허브'로서 대구의 위상을 확립하려는 야심찬 출발점이다.
이번 협의회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변화는 '위기관리 거버넌스'의 도입이다. 감염병 팬데믹, 기후위기, 의료 인력의 불균형 등 복합적 위험이 일상화된 지금, 지역 의료체계는 단순한 진료,서비스를 넘어 '위기 대응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위기관리 체계를 협의회의 공식 의제로 삼고, 의료, 보건, 행정, 산업계가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협력망을 구축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과거 코로나때 대구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위기를 맞이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그때의 혼란과 고통은 준비되지 않은 시스템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이제 AI 바이오 메디시티 협의회가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는다면, 대구는 재난 시에도 의료안전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협의회의 지속 가능성과 실질적 성과다. 이름만 바뀐 조직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정책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 병원과 대학, 연구소, 기업, 시민이 참여하는 개방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지역 의료의 자원을 하나로 모으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대구 의료산업 생태계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재출범 위원회 초대 민복기 회장은 과거 코로나사태는 물론, 메디시티 대구 브랜드의 세계화와 외국인 환자 유치 등에 공헌하여 이 브랜드가 국내외에 명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대구 의료계를 하나로 묶어내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리더십으로 AI 바이오메디시티 협의회를 운영하며, 대구 의료의 미래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를 기대한다. 또한 희망의 징검다리사업으로 10년간 대구시 저소득층에게 50억원대의 재능기부를 하고있는 대구시치과의사회의 박세호회장, 15년동안 전국최초의 대한민국 한의학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는 한의사회의 노희목회장, 전국최초의 심야약국과 마약 중독 예방상담 약국을 운영하는 대구시 약사회의 금병미회장, 코로나 팬더믹을 현명하게 대처하여 대통령표창을 수상한 대구시 간호사회의 서부덕회장, 이 어번져스 급의 각 의료단체 대표들이 대구가 진정한 바이오메디컬 중심도시로 도약하고 국가 차원의 기관 유치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모였다. 그 출발점으로 국립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가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 치과산업은 대구가 전국에서 가장 강점을 가진 분야이며, 이를 국가 연구개발과 연계할 때 비로소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AI 바이오메디시티 협의회의 재출범은 과거의 성과를 넘어 미래로 가는 새로운 약속이다. 협의회가 지역 의료와 바이오산업, AI 혁신, 위기관리 체계를 아우르는 구심점이 되기를, 그리고 그 여정의 첫 장이 국립치의학연구원의 성공적 유치로 장식되기를 기대한다. 대구는 다시 한 번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에는 한층 더 강력하고, 한층 더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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