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한동대 부총장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떠난 유럽 여행의 목적지는 긴 토론 끝에 마음이 모아진 한 도시,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라고 쓰고 가우디라고 읽는다"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도시의 공기 속에는 그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안토니 가우디(1852~1926)는 바르셀로나의 예술과 문화는 물론, 경제와 도시 구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자연과 신앙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유기적인 곡선과 생동감 있는 색채, 상징적 형태로 도시의 건축 언어를 새롭게 썼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까지 이어지는 건축물들은 도시 전체를 거대한 야외 미술관으로 엮어냈다.
오늘날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도시를 움직이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사망한 지 백 년이 다 된 지금도 매년 수백만의 방문객이 그의 건축을 보기 위해 찾아오고, 수많은 일자리와 상권이 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백 년이 넘도록 건축 중인 성당임에도 도시의 심장이 되었고, 바르셀로나의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유산은 경제가 아닌 문화적 차원에 있다. 가우디는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다"라며 신앙과 자연의 조화를 건축으로 표현했고, 그의 철학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도시를 자랑스럽게 여길 이유가 되었다. 한 사람의 창조성이 한 도시의 자부심과 경제, 정체성을 다시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 언제나 유효했다.
도시마다 마주치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본다. 그 역사의 변화를 이끈 것은 언제나 한 사람에서 비롯되었고, 한 시대의 정신을 가장 깊이 새겨 넣은 사람들은 역시 예술가들이었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바꾸었듯,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밀라노를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미켈란젤로는 로마와 피렌체에 영혼을 새겼다. 베토벤은 빈을 음악의 도시로 완성했으며, 반 고흐는 아를의 풍경을 세계인의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이처럼 한 도시의 얼굴을 바꾼 것은 정책이나 자본이 아니라, 먼저 깨어 선 한 사람의 시선과 선택, 그리고 용기였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들도 시작은 언제나 한 아이였다. 한 사람의 내면에 심어진 믿음과 관계, 따뜻한 시선이 그들을 길러냈다. 가우디 역시 홀로 선 거인은 아니었다. 병약했던 그는 깊은 신앙심을 지닌 어머니에게서 내면의 평화를 배웠고, 대학 시절 만난 스승 후안 마타 교수에게서 수학적 질서와 구조의 아름다움을 익혔다. 또한 프랑스 건축가 비올레 르 뒤크의 사상을 연구하며 "자연이야말로 신의 건축 교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가우디는 건축전문학교의 졸업시험에서 낙제했고, 재시험 끝에 어렵게 졸업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시 교장은 졸업식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러분, 제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바보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시간이 증명했듯, 잠재된 가능성은 기다림 속에서 피어난다. 이처럼 한 사람이라는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리는 정원사들이 있어야 한다. 교육은 공장이 아닌 정원처럼 가꾸어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오래 바라보고 오래 돌보면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의 빛이 발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 믿음의 결과를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다.
한 사람이 미래다. 그 한 사람을 깊이 세울 때 위대하고 넓은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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