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영화평론가
'국보'(감독 이상일)는 일본의 전통예술인 가부키의 세계를 담아낸 작품이다. 지난 6월6일 일본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 순위 1위를 넘보고 있다는 점, 일본 영화 중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후보로 지정되었다는 점 등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대체로 생소하고, 더러는 심리적 장벽을 느낄 수도 있을 가부키 문화를 다루고 있지만, '국보'는 극장에서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그만큼 미학적 완성도가 높고 서사도 촘촘하며, 감동적인 드라마를 품고 있다.
가부키는 연기, 춤, 노래가 결합된 종합예술이자 일본의 대표적 전통극예술이다. 한국의 마당극이나 탈춤이 현장에 따라 관객의 반응을 수용하고 즉흥적인 변주를 허용하는 반면, 가부키는 배우의 신체와 연기 스타일이 정형화되어 있어 규범을 어떻게 재현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예술이다. 그래서 가부키 배우들은 공연에 적합한 몸을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또한 가부키는 철저히 가문의 세습구조로 전승되는 예술이기에 가부키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재능이 뛰어나도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국보'는 가부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구시대적 관습에 대한 비판의식도 함께 담고 있다.
조폭의 아들로 태어난 '키쿠오'(요시자와 료)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경쟁 조직원에게 피살되는 것을 목도한다. 그렇게 가문은 몰락했지만 키쿠오의 재능을 높게 산 국민 가부키 배우 '한지로'(와타나베 켄)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그를 제자로 들여 아들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 함께 교육시킨다. 둘도 없는 친구이자 라이벌이 된 키쿠오와 슌스케는 고된 훈련을 견뎌나가고,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배우)로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다. 두 사람의 데뷔작은 배우들에게 일종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는 '등나무 처녀'였는데, 이 듀엣 공연에서 키쿠오는 천부적인 재능을, 슌스케는 정석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혈통을 중시하는 가부키 문화에서 딜레마로 작용한다. 한지로는 아들보다 키쿠오의 연기를 더 높이 평가하고, 마땅히 슌스케에게 가야 할 후계자 자리를 키쿠오에게 넘겨주고 만다. 그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슌스케는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고, 키쿠오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 후원자들과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고초를 겪는다. 긴 방황 끝에 슌스케가 집으로 돌아오자 가부키 업계는 그를 환영해주고, 이번에는 키쿠오가 작은 술집을 전전하며 재기만을 기다린다. 친형제처럼 자라난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사이에 놓여있었던 것은 흔한 질투나 열등감이 아니라 핏줄과 제도다. '국보'는 수십 년에 걸친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을 담담하게 따라가며 전통예술을 둘러싼 모순된 시선을 지적한다. 예술가에게 혈통이 중요하다는 망상이 사라지기까지는 이 영화 안에서만 키쿠오 일생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175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그 지난한 세월을 관객들이 통감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보편적인 희노애락이 진하게 녹아있는 작품으로 세 시간은 무던하게 흘러간다. 화려한 무대와 배우들의 깎아놓은 듯한 자태, 혼신의 연기가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예술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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