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시간주권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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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28 09:48  |  발행일 2025-11-28

Time is money. 이토록 명징한 경구가 또 있을까. 물론 시간이 귀중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시간은 돈이다. 금리가 이를 방증한다. 금리는 재화의 가치와 시간의 가치가 결합한 산물이다. 시간은 제한적이다. 누구도 무한의 시간을 누릴 수 없다. 로마제국 16대 황제이며 '명상록'의 저자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시간은 공평하다. 슈퍼리치도 시간을 살 순 없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계절이 돌아오고 새해가 다시 시작돼도 시간은 그냥 쭉 흘러갈 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한 연유이리라.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 역시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는 시를 남겼다. 라틴어로 전해져오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같은 아포리즘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통찰이 아닌가 싶다.


시간을 더 길게 더 풍요롭게 누리는 방법이 있긴 하다. 이른바 슬기로운 시테크다. 시간 단위당 사용량을 극대화하는 책략이다. 그러자면 짧은 시간에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일해 '시성비'를 높여야 한다. 집중력, 속독력, 열정을 갖춘 사람이 절대 유리하다.


지금은 원자시계가 제공하는 정확하고도 절대적 시간을 살아가지만, 고대의 시간은 다소 느슨하고 상대적 개념이었다. 그나마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해시계를 발명한 후엔 시간 측정이 보다 체계화됐다. 그래 봐야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이 기준이 됐으니 시간은 계절 따라 오차가 컸다.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문학작품엔 "너의 그림자가 열 발이 되면 저녁식사를 하라"는 대목이 나온다.


잡다하기까지 한 이 장광설은 사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얘기하기 위한 서설이다. 생산직과 달리 연구개발직이나 작가처럼 창의적 사고를 요구하는 직업군은 근로와 휴식의 경계가 모호하다. 52시간 근무로 옭아매는 것은 인간의 창발성을 퇴화시키는 경직된 근로제도다. 개인의 '시간 자유'를 박탈하는 억압이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 쉬는 자유를 주자.


AI 시대에 근무시간 통제는 왠지 고루하다. 미국의 수출규제와 핍박을 극복하고 보란 듯 기술 영토를 넓혀가는 화웨이의 연구원들은 '9·9·6'이 기본이다. 출근 오전 9시, 퇴근 밤 9시, 주 6일 근무를 말한다. 파운드리 거인 TSMC는 24시간 연구개발팀을 가동한다. 메모리마저 중국에 위협받고 파운드리는 대만에 처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연구직의 52시간 일률 적용은 물색없는 무리수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기술산업협회 공동 설문조사에서 기업 연구소 76%가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개발 성과가 저하됐다고 응답했다.


근로시간 단절은 시대 트렌드에도 맞지 않는다. 심지어 콘텐츠 소비도 요즘은 한꺼번에 몰아보는 '폭식'이 대세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 확산이 몰아보기(binge-watching) 신드롬을 일으켰다. 52시간 근무제를 결사옹위하는 정부와 민주당은 '본방 사수'만 고집하는 꼰대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연구개발직의 시간 통제를 완화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 반발하자 그 후 침잠한 상태다. 반도체특별법의 'R&D 분야 52시간제 예외'는 반도체업계의 숙원이다. 연구개발직만이라도 시간주권을 돌려주자. 창의성과 능률은 자유분방한 근로환경에서 고양되는 법이다. 논설위원


시간 단위당 사용량 극대화


시성비 높이는 책략 시테크


AI 시대 근무 통제는 고루


콘텐츠 소비 몰아보기 대세


연구개발직에 시간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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