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정약용을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는 민본과 실용이다. 다산의 실용주의를 떠받치는 언어가 실사구시, 이용후생, 경세치용이다. 다산은 성리학의 관념적·형이상학적 논점에는 비판적이었으며, 백성의 삶과 나라 운영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실학을 체계화했다. 일찍이 과학기술에 눈 뜬 '조선의 엔지니어 지식인'이었다. 그의 명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의 저류에도 실학사상이 도도히 흐른다. 행정·제도의 개혁안을 제시했고 비효율과 부조리를 개선하고자 했다. '군기론'에선 칼·활이 아닌 총포 위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윤종록의 장편소설 '대통령 정약용'처럼 타임슬립으로 정약용이 되살아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면? 소설 줄거리대로 정치·경제·교육·농업·기술·국방이 전면 리셋 되지 않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이던 지난해 이미 '먹사니즘' 화두를 던지며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유연한 실용정부"를 강조했다. 실용주의의 첫째 덕목이 효율이다. 경제효율을 제고하려면 성장 주체인 기업의 자율성과 활력을 고양해야 한다. 추상적 '먹사니즘'은 정책을 통해 현실화해야 한다.
한데 외려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이 쏟아진다. 노란봉투법, '더 센' 상법은 노동권 보호와 소액주주 권익에는 유효하겠으나 기업엔 멍에다. 굳이 시행하겠다면 충분한 유예기간과 보완 입법이 따라야 한다. 모호한 대목을 구체화하지 않으면 쟁송(爭訟)이 일상화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를테면 '사업 경영상 결정' 및 '노동쟁의 범위'에 대한 명시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이나 차등의결권 도입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강구해야 형평에 맞다.
그나마 AI 대전환 및 R&D 예산을 대폭 늘린 건 평가할 만하다. 정책뿐 아니다. 외교도 인사도 실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과거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같은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또 미국통 강경화를 주미대사에 기용하고 일본통 외교관 이혁을 주일대사로 발탁했다. 실용주의에 부합한다. 하지만 전문성을 따지지 않고 대장동 변호인 등 측근 변호사들을 중용했다. 명백한 내 편 챙기기다.
개혁 또한 실용주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검찰·사법·언론 3대 개혁 정기국회 기간 내 완료"는 사뭇 위험한 발상이다. 자칫 개악이 될 수 있어서다. 한 친명 의원은 "정 대표의 강성 행보로 대통령이 강조한 '통합과 실용'에 힘을 뺀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대로 "개혁안의 쟁점을 국민 앞에서 토론해야" 마땅하다. 실용적 개혁은 이념에 따른 속전속결이 아니라 공론화를 통한 효율 찾기에 있다.
역대 정부에서도 실용적 정책은 성공으로 귀결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체결이 그랬고,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이 그랬다. 한미FTA는 대미 흑자를 가속화 했고, 문화 개방은 우리 문화 신장의 촉매가 됐다.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은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효율적 접목을 시도했다. 브란트의 아포리즘이 "생각은 현실적으로, 실천은 이상적으로"이다. 실용주의의 반어법 표현이다. 중국 춘추시대 첫 패자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고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실용이다. 이재명표(標) 실용주의, 더는 빛이 바래지 않길 바란다. 논설위원
다산 실학사상 백성 삶 향해
실용주의 첫째 덕목이 효율
李정부 기업 옥죄는 법안들
쟁송 일상화 소지 차단해야
3대 개혁 속도보다 공론화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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