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프리랜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박명선씨(사진 오른쪽)가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박명선씨 제공
대구의 15년차 프리랜서 배우 박명선씨(사진 왼쪽)가 공연을 하고 있다. 박명선씨 제공
대구의 연극,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명선 배우.
프리랜서는 일정한 소속없이 일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2025년 현재,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삶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우리나라의 프리랜서 직종도 다양해졌다.
일하는시민연구소는 2023년말 기준 우리나라 프리랜서 규모를 409만5천여명으로 추산했다. 전체 취업자 중 약 14.8%에 해당되는 수치다.
이 연구소 분석 결과, 프리랜서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7%(남성 2.5%, 여성 3.4%)에 그쳤다. 이처럼 프리랜서는 분명히 노동은 하지만, 직장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닌 탓에 4대 보험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프리랜서 범위는 무척 넓다. 그중에는 어떤 한 분야에 매진해서 꾸준히 갈고 닦아온 전문가들도 적잖다. 프리랜서 예술인들처럼 말이다. 지난 달 27일 대구 남구 대명동 공연거리에서 한 30대 프리랜서 배우를 만났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찾아온 이날, 상당수 프리랜서 신분의 배우들이 공연 연습을 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배우, 그리고 '프리랜서'
"제가 프리랜서들의 삶을 모두 대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프리랜서들도 처한 환경이나 형편은 조금씩 다를테니까요. 그래도 저와 제 주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대구에서 뮤지컬·연극 배우로 일하고 있는 15년차 배우 박명선씨는 이같이 말하며 웃어보였다. 박씨는 쉽게 일반화하기에는 사람이나 세상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다고 했다.
박씨는 "많은 프리랜서 배우들의 한달 수입이 평균 100만원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작품 연습 중간중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라며 "실제 연극 작품으로는 돈을 벌기가 매우 어렵다. 두달간 꼬박 연습을 해도 페이가 30~40만원에 그칠 때가 있다. 10년 전에 받았던 페이나 지금의 페이 수준이 거의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배우들은 일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박씨 역시 한때 평범한 직장해 취업하거나 사업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무대가 너무 좋아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 그는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바치며,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박씨는 "작품 연습을 꾸준히 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에, 직장에 정규직으로 고용돼 일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그래서 대부분 단기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을 배우 일과 병행한다. 식당이나 카페 아르바이트, 택배 등 물류일, 대리운전 등을 하면서 힘겹게 버티는 배우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배우를 하는 게 아니다"며 "다만, 안정적인 삶과는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고 했다.
◆아프면 기회 사라질까 '불안'
프리랜서들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 박씨는 자신과 같은 프리랜서들의 삶을 마치 '달리는 걸 멈추면 쓰러지는 존재' 같다고 했다.
꿈을 위해,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 기회를 얻기 위해,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
특히, '아픈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움직인 만큼 돈을 번다' '지금 자면 돈을 못 번다' '쉬면 기회가 날아간다'라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프리랜서들에겐 아픈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최근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가 발간한 이슈와쟁점 '온라인 플랫폼노동·프리랜서의 건강 및 사회안전망 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55.5%가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한 이유로는 '소득 단절 등 경제적 문제'(38.6%), '고객이나 거래처 일감이 끊길 수 있어서'(19.9%) 등이 있었다.
직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프리랜서들에겐 '병(病)'이 제일 큰 고충인 것이다.
그는 "서른쯤에 폐결핵에 걸린 적이 있다. 제대로 쉬지 않고 연습과 공연을 계속하다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것"이라며 "직장에 안정적으로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들에겐 '오늘 쉬면 내일이 없을 수 있다'는 불안이 늘 내재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몇해 전 한 동료 배우가 뇌 관련 중증질환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몸에 장애가 생겼고, 결국 무대를 떠나고 말았다"며 "일반 직장이었다면 계속 고용된 채로 치료와 재활이 이어질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경우 커리어가 멈추게 된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많이 아프거나 다쳐 치료 시간이 길어질 경우 대부분 생업을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프리랜서에겐 '휴가' '휴식'도 불안한 개념이다. 휴가 기간엔 생계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다양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길
그에게 주 무대는 바로 '대구'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고향인 대구에서 배우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이 나라는 사람도, 인프라도, 기회도 모든 게 서울·수도권에 모여있는 구조다. 그런데 비(非)수도권 지방 도시에서 프리랜서로 살아간다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을까.
그는 "그나마 한강 이남에선 대구가 공연이 많은 편이지만, 확실히 서울 쪽이 더 무대와 관객이 많다"며 "프리랜서들이 단기직 일자리를 구할 기회도 서울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와 산업이 위축되고, 직업의 다양성이 부족한 지방 도시에선 프리랜서의 삶도 쉽지 않다. 실제 수도권 프리랜서(228.6만원)에 비해 비수도권 프리랜서(213.5만원)가 평균 소득이 15.1만원 적다는 분석(일하는시민연구소 '프리랜서 실태와 제도적 개선방향 모색')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서울이 아닌 대구에 터를 잡았을까. 그는 "처음부터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 집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높은 생활비 등의 문제로 프리랜서들도 서울살이를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문화예술도 수도권 중심에서 탈피해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졌으면 한다.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프리랜서가 일할 기회를 얻고, 노동의 댓가를 보장받으며 살기 위해선 결국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 삶의 터전이 더 풍요로워야 한다.
박씨는 "지역의 여유로움과 직업적 다양성의 기반이 갖춰진다면 프리랜서들이 보다 푸근하고 즐겁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공연 한편을 볼 여유도 생기지 않겠냐"라며 "프리랜서의 삶이 보다 나아지길 바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사회의 시스템이 특정 직군에 맞춰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해본다. 다만, 우리 사회에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프리랜서들이 있다는 것은 꼭 알아줬으면 한다. 공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진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