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대구 수성구의 한 요양원에서 소방공무원 조성훈씨가 마술 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펼쳐진 스카프에서 비둘기가 날아 올랐다. 접은 신문지에 물을 넣고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신기한 순간, 찢어진 신문지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오는 놀라운 마법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들이 단 한 번의 손짓에 모두 홀렸다. 흐려진 눈동자를 번쩍 뜨고 지켜보건만 놀라움에 입은 반쯤 벌어진다. 계속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와 감탄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 노인들의 얼굴엔 아이 같은 웃음이 번졌다.
지난달 29일 대구 수성구의 한 요양원에서 펼쳐진 마술공연이다. 이날 공연을 펼친 마술사는 32년차 소방공무원 조성훈(57·대구 달성군)씨다.
소방공무원인 조씨가 마술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10살 무렵 우연한 기회에 마술 공연을 봤다. 이때 마술의 신기함에 빠져들어 마술사 아저씨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라다녔다. 잔심부름도 하며 틈틈이 마술을 배웠다.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무대에 서도 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17살 때 시민회관에서 스승과 첫 공연을 했다. 이후 자신감이 생겨 크고 작은 공연에 참가했다. 입대를 하면서 마술을 중단했다.
전역을 앞두고 전역 후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 끝에 소방공무원의 꿈을 갖게 됐다. 1993년 소방공무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옆 돌아볼 겨를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마술을 중단하고 10여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마술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며 잠자고 있던 마술 장비를 꺼냈다.
마술쇼는 사실상 재능기부가 거의 없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마술을 익히는 데 들어가는 시간, 마술쇼를 할 때 사용하는 비싼 마술 도구,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 등이 만만치 않아서다. 마술사 한 명이 20분간 마술쇼를 하면, 보통 30만~35만원을 수고비로 받는다고 한다.
재능기부하는 소방관 마술사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조 마술사는 장애인시설, 복지관, 고아원, 요양원 등 소외계층이나 보호가 필요한 곳에서 월 1~2회 재능기부를 한다.
조씨의 마술 실력도 아마추어 수준은 아니다. 그는 해외 마술 자료 등을 보며 혼자 다양한 마술을 익혔고, 일루전, 카드 등 고난이도의 모든 마술이 가능한 수준이다. 2019년 경남 거제시에서 열린 국제매직컨벤션 마술대회에서 45명의 마술사들과 겨뤄, 우수상 1개, 특별상 4개를 받았다.
소방공무원이자 마술사인 조씨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은 최고의 마술사로 변신하는 삶을 꿈꾼다. 마술은 웃음을 싣고, 조씨는 소방관과 마술사로 마술 같은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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