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우리는 김장을 했다

  • 이지영
  • |
  • 입력 2025-12-04 17:37  |  발행일 2025-12-04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연례행사인 김장을 해치웠다. 양가 식구는 물론 친척, 아버지의 지인 가족까지 모두 일곱 집이 모였다. 준비한 배추만 200포기가 넘었다. 엄마 집 마당에 비닐이 깔리고, 각 집에서 가져온 양념들이 순서를 기다리듯 일렬로 놓였다. 마당 한켠에서는 큼지막한 돼지고기가 삶아지고, 김칫소를 버무리는 손은 쉬지 않는다. "김치맛 좀 봐라"며 서로 입에 갓 버무린 김치를 넣어주며 웃기도 했다. 그렇게 김장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이면 수육과 제철 굴, 포항에서 온 과메기가 한가득 식탁에 오르고, 어느새 김장은 흥겨운 잔치로 변한다.


우리는 매년 엄마가 직접 기른 배추로 김장을 한다. 엄마의 손길이 담긴 배추에 값을 쳐 드리고, 완성된 김치는 각자 집으로 가져간다. 김장이 마무리되면 작은 봉지에 김장김치를 담아 동네 노인정으로 향한다. "김장김치는 나눠 먹는게 맛이지"라는 부모님의 말에는 정이 배어 있다.


회사 점심시간에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다들 놀라워했다. "요즘도 그렇게 김장하는 집이 있어요?" 그럴 만한 반응이다. 아파트 거실도 아니고, 마당에 비닐을 깔고 온 가족이 모여 김장하는 풍경은 이제 드물다.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김장은 점점 생활에서 멀어지고 있다. 실제로 가정의 김장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김장을 하겠다'는 응답은 50%를 겨우 넘겼다. 지난 2년 연속 김장을 했던 이들 중 10%가량은 올해는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향후 김장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은 70%에 육박했다.


규모도 작아지고 있다. 김장을 하겠다는 사람 중 50%가 20㎏ 이하를 선택했고, 그중 30%는 5㎏ 이하로 계획했다. 생강, 쪽파, 마늘 등 부재료 가격 상승도 부담이다. 아예 김장을 하지 않겠다는 '김포족'도 늘고 있다. 여러 조사에서 그 비율은 절반에 이르렀다. 노동 부담, 가족 수 감소, 비용이 주된 이유다.


김장을 하지 않는 이유가 노동 때문만은 아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김장을 하기엔, 각자의 밥상도 생활도 이미 달라졌다. 그래서 김장은 적게, 작게, 때로는 아예 하지 않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변화는 자연스럽지만, 오래된 풍경이 하나씩 지워지는 건 아쉽다. 솔직히 나도 사 먹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는 비용을 따지면 그때그때 사서 먹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시간까지 아낄 수 있으니 그 유혹을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올해도 고무장갑을 끼고 김칫소를 버무렸다. 김장이 끝나고 남은 건 한 통의 김치만이 아니다. 우리 가족은 올해도 겨울 김장이라는 한 장면을 기록했다. 그 풍경은 내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자 이미지

이지영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