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한동대 부총장
2025년의 끝자락, 우리는 'K'라는 접두어로 포장된 찬란한 성취 앞에 서 있다. K-팝, K-드라마, K-영화, K-뷰티, K-푸드에 이르기까지,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시장에서 신뢰와 열광을 불러오는 브랜드가 되었다. 무대와 스크린, SNS 등에서 울려 퍼지는 박수는 대한민국 교육이 꽤 성공적인 결실을 맺어온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화려함 뒤에 질문이 남는다. 우리의 교육은 과연 '좋은 교육'일까? 무대는 빛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숨이 차다. 뒤처질까 두려워 멈추지 못하는 학생들, 그 곁에서 함께 뛰는 학부모와 교사도 지쳐간다. 그럼에도 결과만 보면 성공처럼 보이니 혼란은 더 깊어만 간다.
그래서 우리는 '착시'를 조심해야 한다. 이 화려한 결과는 상위 1%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길을 개척할 예외적 재능의 소유자들이다. 교육의 본질은 이런 1%의 성과가 아니라, 99%의 평범한 시민이 각자의 삶을 존엄하게 살아낼 힘을 길렀는지에서 드러난다.
유학 시절, 미국의 교육 현장을 보며 부러웠다. 창의성과 토론 문화, 개인의 재능이 존중받는 교실, 실패를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선망했다. 어느 날 지도교수에게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하자, 조용히 듣던 그분이 뜻밖의 한마디를 건넸다. "내가 보기엔 한국 유학생들도 충분히 훌륭해 보이는데요?"
그 한마디는 예리했다. 한국 교육의 피해자인 양 비판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 시스템을 통과해온 수혜자였다. 그 말은 내가 던지고 있던 질문이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깨닫게 했다. '한국 교육이 어디가 문제인가?'보다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했어야 했다.
우리의 교육에도 분명 강점이 있다. 기초학력의 보편성, 성실함과 끈기의 가치,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 여기에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상징되던 공동체를 향한 교육의 이상도 있었다. 폐허에서 일어선 나라가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배경에는 공동체 의식과 인류 공영을 향한 교육 철학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유독 아쉽다. 어느 순간부터 국가 담론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경구가 들리지 않는다. 경제와 민생이 수십 번 언급되는 동안, 교육의 철학과 미래 인재에 대한 고민은 침묵에 가깝다. 국가의 미래를 말하면서 정작 그 미래를 빚어갈 교육은 좀처럼 중심 의제가 되지 못한다. 철학의 부재는 결국 현장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1%의 성공 뒤에서 그늘은 더 짙어진다. 청소년 자살률은 OECD 최상위권이고, 아이들의 우울과 불안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답할 기회를 잃어간다. 외적인 성취는 늘었을지 모르나, 삶을 견디는 내면의 근육은 오히려 약해졌다. 이 그늘은 성과를 위해 우리가 외면해 온 교육의 민낯이다.
12월은 성찰의 계절이다. 이제 다시 질문의 시간이다. 우리 교육은 1%의 영웅을 만드는 공장인가, 아니면 100%의 건강하고 행복한 시민을 세우는 토양인가?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보다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을 가르치고, 경쟁보다 공동체를, 성과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다.
대한민국의 다음 10년, 100년은 교육의 본질을 다시 말하기 시작하는 용기에 달려 있다. 'K'의 환호가 무대 밖 아이들에게도 온기로 닿는 날, 우리는 더 온전히 자랑스러워질 것이다. 그 환호의 대상이 이번에는 K-교육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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