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팔공산과 동화사의 유래 1

  • 동화사 기획국장 범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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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24 15:40  |  발행일 2025-12-24
동화사 기획국장 범상 스님

동화사 기획국장 범상 스님

외래 생명체가 이 땅에서 30년 이상 생존을 이어가고, 사람들의 생활에 이용될 때 토종의 자격을 얻는다. 이처럼 문화란 말 그대로 환경이라는 공간과 삶이라는 시간이 만들고 전하는 유무형의 것들을 말한다. 아이를 갖기 전부터 기도하고, 합방 일을 잡고, 태교로 이어진다. 일련의 과정에서 보면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삶 속의 사건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되며 문화를 이룬다. 그래서 지명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시간을 달리하며 때로는 엉뚱하게 해석되기도 하고, 말쟁이 들이 그럴싸하게 덧붙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기에 얼마 전부터 동화사에 살게 된 필자 역시 짧은 견해를 보탠다.


팔공산(八公山)은 겨울에 오동나무가 꽃을 피웠다는 동화사와 부처님의 지혜가 은빛 바다 물결처럼 반짝인다는 은해사를 품고 있는 성지이다. 불교는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힘으로 강제이식 하지 않은 유일한 종교이며 가는 곳의 문화와 습합하여 상생발전을 이루어왔다. 이로서 국가와 민족의 최대 가치인 문화정체성을 이어오는 사찰들은 민족의 성지로 손색이 없다.


팔공산은 시대에 따라 중악(中嶽), 부악(父嶽), 공산(公山), 꿩 '치(雉)'자를 썼다하여 꿩산이라 불러졌다고 한다. 중악, 부악은 삼국시대 국가차원에서 천제를 지냈던 삼산오악신앙의 흔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공산과 꿩산은 왕건과 견훤의 전투가 말해주듯 지리적으로 국토방위에 중요한 군사기지로서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꿩 치는 성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설치한 방어시설로서 꿩처럼 숨어서 적을 살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팔공산의 '팔(八)'에 대한 해석은 달라져야 한다. 이때까지 팔을 여덟 개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억지로 여덟을 맞추려다 보니 역사적 근거 없이 공산전투에서 8명의 장수가 목숨을 잃어 팔공이 되었다는 설과, 중국의 어느 곳의 지명을 따왔다는 억지 주장들이 생겼다.


따라서 팔을 팔경(八景), 팔방미인처럼 사방팔방에 으뜸이라는 공간적 개념과 부족함 없이 갖추었다는 의미로 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왜냐하면 공산전투에서 신숭겸장군이 왕건과 옷을 바꾸어 입고 자신의 죽음으로 주군을 살렸다. 이것은 충(忠), 즉 공심(公心)의 극치로서 사방팔방에 자랑할 최고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왜 충과 공심인가. 향교에는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은 배향하지 않지만 반대편에 있었던 정몽주는 모신다. 임금의 입장에서는 비록 자신의 왕조가 아닐지라도 반역에 준하는 혁명가 보다는 목숨 받쳐 충성하는 신하가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공산이라는 명칭은 국가를 위하는 공심의 으뜸으로서 사방팔방에 자랑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길이 남을 공산전투의 신숭겸장군과 시대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팔방이 평면적 세계관이라면 여기에 상하(上下)를 보탠 시방(十方)은 불교의 우주관이다. 팔공산 최고봉은 천제를 올렸던 재단이 있는 비로봉이다. 이것은 일체만물이 부처이므로 시방(우주)역시 부처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최고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비로봉은 이 땅에 불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추정해볼 수 있다. 살펴보았듯이 팔공산이라는 이름에서 세상의 으뜸이 되는 공심과 나를 포함한 일체만물은 부처로서 존귀하다는 역사성과 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


범상 스님<동화사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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