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 기술보증기금 고객부장
2025년 코스피지수는 마침내 4000선을 넘어섰다. 언론은 '사천피 시대'를 외치며 축포를 터뜨렸지만, 다수 가계의 체감은 싸늘하다. 지수는 치솟았는데 통장은 그대로이고 일자리는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다. 청년과 서민에게 4000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자본시장의 잔치는 이어지는데, 초대받지 못한 이들의 허탈감만 깊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1980년 100이라는 기준을 정한 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을 통과하며 오늘의 4000선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궤적을 돌아보면 지수는 조용히 오르다가도 한순간 급락하고, 악재 속에서 느닷없이 반등하는 등 우리의 예측을 번번이 비켜갔다. 이 변동성은 연기금·기관·외국인·정책이 얽힌 힘의 결과물로, 개인의 공부와 정보력만으로 읽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코스피는 일부 투자자의 놀이터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자산과 노후, 산업 구조를 좌우하는 공적 공간이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노동과 자본' 힘의 불균형이다.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노동이 가져가는 몫은 장기적으로 정체 또는 하락의 흐름을 보여 왔다. 기업 부문의 노동소득분배율은 크게 떨어진 뒤에도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르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성장 속에서 자본의 몫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동은 현금흐름을 만들지만 과실은 자본이 가져가는 구도가, 코스피 4000이라는 숫자 속에 조용히 새겨져 있는 셈이다.
기업의 가치는 노동과 자본의 합작품이다. 공장과 설비, 브랜드와 기술은 자본의 결실이지만, 이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노동의 시간과 숙련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자본을 절대적 주인으로 대우하고, 노동의 역할은 형식적 협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노동은 언제든 교체 가능한 비용으로 취급된다. 이런 조건에서는 지수가 이천, 삼천, 사천을 넘어도 대다수 노동자의 삶이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노동반 자본반'이라는 새로운 상상력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지분을 50대 50으로 나누자는 구호가 아니다. 책임과 권한, 위험과 성과를 노동과 자본이 함께 나누자는 사회적 합의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양축을 세우는 일이다. 노동이 임금만 받는 존재를 넘어 일정한 지분과 의결권을 가진 '공동 참여자'로 자리 잡을 때, 지수 상승과 삶의 체감 사이의 간극은 비로소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와 국민참여형 펀드는 국민 자금을 모아 첨단 산업에 투자하고 성과를 함께 나누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겉으로 보면 '모두가 주주가 되는 길'이 열리는 듯하지만, 설계를 잘못하면 결국 대기업과 일부 자본의 이익을 뒷받침하는 통로로 흐를 위험도 크다. 기업의 가치는 독점물이 아니라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국민'의 이름을 빌리되 국민은 손실만 떠안는 일이 없도록, 권한과 책임, 위험 분담을 투명하게 설계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반 자본반'이라는 새로운 기준선이다. 기업 이윤의 일정 부분을 임금·교육·고용안정과 연동하고, 노동이 지분과 의결권을 함께 갖는 구조를 점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사주와 종업원지주제, 노동이사제, 국민·공동 펀드를 실질 참여 중심으로 손질할 때 코스피 4000의 축제가 모두의 축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반 자본반, 코스피 다음 40년을 위한 새로운 기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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