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세수술의 시간 한계를 넘다” 왕정타오 산둥성 인민병원 교수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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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28 17:49  |  발행일 2025-12-28
“의사에게도 한계가 있다” 무력감에서 시작된 세계적 혁신
저온 보존·조립형 재건술…교과서를 넘어선 임상 성과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 환자에 대한 애정과 집요함
중국을 대표하는 미세수술 전문가인 왕정타오 산둥성 인민병원 수부·족부외과 주임교수가 손가락 재건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중국을 대표하는 미세수술 전문가인 왕정타오 산둥성 인민병원 수부·족부외과 주임교수가 손가락 재건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왕정타오 산둥성 인민병원 수부·족부외과 주임교수는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미세수술 권위자로, 수부·재건 미세수술 분야에서 기술적 한계를 넓혀온 임상의이자 학자다. -196℃ 저온 보존 절단 수지 재접합과 조립형 수지 재건술 등으로 미세수술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W병원에서 특강을 열어 미세수술의 최신 성과와 교육 철학을 공유하며, 국제 미세수술계에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세계적인 미세수술 권위자로 만든 결정적 계기나 전환점은.


"어릴 때 누나의 팔에 큰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농촌에서 자라 어디에 어떤 병원이 있는지,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때 언젠가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두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첫 번째는 18살 남학생이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발견됐을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상지와 하지 모두를 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아이를 보면서, 의사인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의사에게도 분명한 한계가 있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더 발전한 기술로 이런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됐다. 두 번째는 어느 정도 손에 기술이 쌓였을 때의 일이다. 19살 노동자가 기계 사고로 손이 심하게 으스러진 채 왔는데, 주변에서는 모두 '절단이 최선'이라고 했다. 너무 어린 나이였고, 한 번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밤을 새워 수술했고, 다행히 성공했다. 여러 병원에서 '보존이 어렵다'는 말만 듣고 왔던 환자였는데, 마취에서 깨어 손을 보자 그 자리에서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한 번의 수술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라는 걸 깊이 느꼈다."


▶-196℃에서 저온 보존된 절단 수지를 재접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과가 미세수술의 '한계'를 어떻게 바꿨나.


"현장에서는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두부 손상이나 흉부·복부 손상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손상을 함께 안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재접합이 가능해 보여도 당장 수술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 환자의 전신 상태가 안정됐을 때다. 그때쯤이면 절단된 손가락은 이미 괴사하거나 부패해 재접합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당장은 못 붙이더라도, 살아 있는 상태로 보존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붙일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기존에는 보존 가능 시간이 짧게는 2시간, 길어도 96시간 정도가 한계로 여겨졌다. 저온 보존액을 혈관 안으로 관류하고, 자체 개발한 보호 물질을 적용한 뒤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환경에서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개발했다. 이렇게 하면 며칠은 물론이고, 이론적으로는 몇 달, 더 장기간 보존도 가능해진다. 필요할 때 해동해 재접합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세수술의 시간적 한계를 넓혔다고 볼 수 있다."


▶'조립형 수지 재건술'이 환자의 삶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과거에는 손가락을 재건하기 위해 발가락을 옮겨오는 방식이 가장 흔했다. 문제는 손가락 하나를 살리기 위해 발가락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손가락 결손이 여러 개인 경우에는 발 기능과 외형에도 큰 부담이 된다. 조립형 재건은 이런 한계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손과 발 모두의 기능과 외형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정상 손가락에 가까운 형태와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다. 단순히 '붙이는' 수술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미세수술 전문가인 왕정타오 산둥성 인민병원 수부·족부외과 주임교수가 손가락 재건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중국을 대표하는 미세수술 전문가인 왕정타오 산둥성 인민병원 수부·족부외과 주임교수가 손가락 재건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재건된 손가락이 '발가락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 특히 신경 쓴 이유는.


"손은 단순한 노동 도구가 아니다. 얼굴처럼 늘 드러나는 부위이고, 외형은 사람의 사회적 관계와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외형과 기능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손가락의 길이와 마디 비율은 기능에 최적화돼 있고, 그런 구조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어떻게든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재건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상 구조와 기능에 최대한 가까이 가는 것이다. 외과의사는 설계도를 새로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설계도를 최대한 존중하며 수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미세수술을 위한 임상 해부학 아틀라스'를 집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단순하다. 재건 미세수술을 하려면 무엇보다 정상 인체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출발점은 언제나 해부학이다. 어려움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기존 해부학이 주로 해부학자 관점에서 정리돼 있다는 점이었다. 미세수술 의사 관점에서 같은 구조를 다시 해석해야 했다. 또 하나는 작업 자체의 고됨이었다. 현미경 아래에서 미세 혈관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해부해야 했고, 신선 인체 표본으로 장시간 작업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존 그림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술에 도움이 되는 도해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이번 대구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W병원은 기술뿐 아니라 시스템과 관리 수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수술실 운영과 팀워크는 내가 여러 나라에서 본 병원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앞으로 한·중 병원 간에 더 자주 교류하면서 서로 배우고 함께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세수술을 꿈꾸는 젊은 의사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거창한 말보다는 세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환자에 대한 애정, 포기하지 않는 성실함,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는 집요함이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따라오지만, 이 마음가짐이 없으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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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사실 위에 진심을 더합니다.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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