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최근 대구시립극단이 공연한 '맥베스'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관람했다. 인간의 욕망과 광기, 그리고 파멸의 어두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왔고 또 읽어온 텍스트였기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본다는 사실 외에는 큰 기대감 없이 공연장으로 향했다.
무대는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다. 김동찬(맥베스 역)과 김효숙(맥베스 부인 역)을 비롯한 연극배우들의 열연과 무대는 장면마다 긴장의 고삐를 한순간도 늦추지 않았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놀랐고, 감동했다. 배우들의 호흡과 움직임을 따라가며 얼마나 몰입했던지,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온몸이 쑤시고 아플 정도였다. 극중 캐릭터에 감정이 이입되어(Role-playing) 내 안을 통과한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는 맥베스를 보았다!
공연장을 빠져 나오는 순간, '보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흔히 '보다'를 감각적 행위로만 이해하지만, 국어에서 이 말은 훨씬 넓은 뜻을 품고 있다. (보조)동사로서 '보다'는 알다·즐기다·읽다 등의 동사적 기능은 물론, '알아보다·느껴보다·겪어보다'에서처럼,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를 가리킨다.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또한 느끼는 것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 시각과 청각은 가장 우등한 감각으로 여겨졌다. 특히 시각은 존재가 우리 앞에 드러나는 순간을 가장 빠르게 포착하는 감각이다. 눈앞에 무엇인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본다. 이때 본다는 것은 단순한 형태의 인식이 아니라, 존재가 현전하는 순간이다. 그 결과 아르튀르 랭보에게 시인은 곧 '견자(見者, la voyant)'의 다른 이름이었다. 드러나 보이는 것을 보는 사람이 시인이다.
현대 예술은 이 '보다'의 감각을 새롭게 전위시킨다. 예술은 더 이상 감정을 설명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는다. 그 순간, 늘 보아오던 사물과 풍경은 낯설게 다가오고, 우리는 자동화된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유를 시작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말하는 '예술의 힘'도 그 연장선에 놓인다. 예술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뒤흔들며, 다르게 보는 시선을 열어 준다. 예술은 설명하고 설득하기보다 느끼고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대상과 주체의 만남이자, 상호관계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예술이라는 거울을 통해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게 '맥베스'의 무대도 그랬다. 이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설명하기보다, 관객을 욕망이 작동하는 세계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공연이 끝난 뒤 남은 것은 분명한 결론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와 침묵이었다. 그것은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그 과정에서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에 가까웠다.
예술의 힘과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예술은 욕망을 바로 보게 하고, 다르게 느끼며,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마련해 준다. 그 차이의 세계 속에서 진정한 나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그 질문을 통해 내면의 깊이를 더해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맥베스'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해가 어둑해진다. 길 위에서 나는 다시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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